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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미국판 만주 변호사

연합뉴스

2026.10.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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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미국판 만주 변호사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정치권과 법조계에는 '만주 변호사'라는 은어가 있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데도 법률 전문가나 법조인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이제는 전문적 식견 없는 허위 경력을 상징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굳어졌다. 국회에서는 비법률가 출신임에도 율사들이 모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오래 몸담아 나름 법적 전문성이 쌓인 국회의원을 농담 삼아 만주 변호사로 칭하기도 한다. 가끔은 실제 법률가들끼리도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를 만주 변호사로 비하하는 경우도 봤다.

만주 변호사란 표현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 만주로 피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우리 근대사의 특수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 해방 직후 과거 경력을 거창하게 부풀릴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다", "만주에서 큰 사업을 했다"는 식으로 허풍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만주에서 뭘 했든 전혀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 앞에 만주란 단어가 붙으면 '실체 없는 허위 경력'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의사 면허증 없는 돌팔이를 '만주 의사'로 부른 적도 있었다. '만주 선비', '만주 거상', '만주 주먹' 등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 만주 변호사 이야기가 정말로 현실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에서, 그것도 세계 권력의 정점인 백악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임명한 케이티 재커라이어 백악관 대변인이 과거부터 대표 경력을 변호사로 내세웠지만, 알고 보니 미국 변호사 시험에도 떨어진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심지어 재커라이어는 첫 브리핑에서 변호사 시험을 어느 주에서 합격했냐는 질문에 "중국으로 이주했을 때"라고 답했다. 확인하기 어려운 답변인 데다 하필 지역마저 중국이니, 이 정도면 만주 변호사 무용담의 완성이라 할 만하다.

거짓말과 허위 경력에 대해 미국 사회는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반응한다. 재커라이어가 미국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중국에서 외국인은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없으니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다. 그를 발탁한 대통령도 망신당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입'을 발표하며 재커라이어를 변호사로 소개했었다. 경력 논란에 더해 공보 참모로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재커라이어는 결국 취임 나흘 만에 경질 결정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자 캐롤라인 레빗이 중견 기자들과 논리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숙함이 더 부각됐다.

미국판 만주 변호사 논란은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허위 경력을 내세워 정부, 기업, 기관, 단체 등에서 요직을 맡는 건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은 예술계를 넘어 정치권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정부, 기관 등에서 인사 검증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면서 학력·경력 위조 사례가 확실히 줄었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사람을 뽑아 쓰는 절차는 신중하고 철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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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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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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