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30여 년 전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입헌민주당의 쓰지모토 기요미(辻元清美) 참의원 의원이 초선 의원이던 1995년 다카이치의 국회 발언을 다시 읽은 뒤 “총리가 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물었을 때다.
당시 다카이치는 전쟁에 대한 반성을 언급한 구리야마 다카카즈 주미 일본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적어도 나 자신은 당사자라고 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반성하고 있지 않으며, 반성을 요구받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전후 50년을 맞아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놓고 논쟁하던 시기였다.
5개월 뒤인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다카이치는 이 담화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2005년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불견식한 견해”라고 비판했고, 2013년에는 담화에 담긴 ‘침략’이라는 표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16일 국회에서 나온 답변은 달랐다. 다카이치 총리는 역사인식에 대해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으며 다카이치 내각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쓰지모토 의원이 다시 “무라야마 담화는 어떤가”라고 묻자 다카이치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답했다. 과거 자신이 거듭 비판했던 담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계승 방침을 확인한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를 정부 방침으로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총무상이던 2014년에도 국회에서 “개인적인 신념과 사상은 있지만” 무라야마 담화가 각의 결정된 만큼 “내각의 일원으로서 그 방침에 따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를 이끄는 총리로서 “무라야마 담화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의 추계 예대제 첫날인 10월 1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공물로 봉납한 마사카키 옆에 다카이치 총리의 이름이 적힌 목패(왼쪽)가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는 17일 시작된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에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內閣總理大臣 高市早苗)’ 명의로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그러나 19일까지 이어지는 예대제 기간 직접 참배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각료 시절 8월 15일과 봄·가을 예대제 때 야스쿠니를 직접 찾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10월 자민당 총재에 오른 직후 열린 추계 예대제를 시작으로 올해 4월 춘계 예대제, 이번 추계 예대제까지 세 차례 연속 직접 참배를 보류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8월 15일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았다. 대신 자민당 총재 명의로 다마구시료를 봉납하고,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열린 일본무도관 주차장에서 야스쿠니 방향을 향해 절하는 ‘요배(遙拜)’를 했다. 야스쿠니와의 연결은 유지하면서도 현직 총리의 직접 참배는 피한 것이다.
다만 다카이치 개인의 역사관 자체가 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TV아사히는 ‘대만 유사시 발언으로 관계가 냉각된 중국과 양호한 관계를 이어가는 한국을 고려해 참배를 보류한 것’으로 전했다. 교도통신도 ‘중국·한국과의 외교 갈등을 피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