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454.59포인트(7.57%) 하락하며 5554.22로 마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을 이끌었던 반도체주가 지난주 급락하며 미국과 아시아 증시를 강타했다.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진 데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추격 우려까지 겹치면서다. “AI 거품 붕괴의 예행연습(dress rehearsal)”이란 진단(파이낸셜타임스·FT)까지 나온다.
1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 16일까지 8거래일 연속 내렸다. 이 기간 낙폭은 약 16%에 이른다. 2008년 10월 1~10일(8거래일) 이후 18년 만에 최장 연속 하락 기록이다. 나스닥종합지수도 지난주 4.5% 내려 6월 이후 최악의 주간 성적을 기록했다.
박경민 기자
아시아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AI 하드웨어 관련 종목군은 지난주 11% 떨어져 7월 중순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7거래일 연속 밀리다 지난 16일 2.05% 반등했다. 하지만 지난주(12~16일) 전체로는 14.5% 떨어졌다. 특히 15일 하루에만 7.57% 급락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17.7%), SK하이닉스(-24.3%)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대만 자취안(가권)지수도 지난주 각각 5.4%, 4.5% 하락했다.
김경진 기자
시장의 불안을 키운 것은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의 설비투자는 향후 3년간 3조 달러(약 4000조원)를 넘어설 전망이지만, 고유가·고금리로 차입 부담이 커지고 있다.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의 회사채 가격은 부실 위험을 시사하는 수준까지 떨어졌고, 주가도 지난주 25% 급락했다.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이 자신이 무엇에 투자하는지도 모르는 카지노와 같은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첨단 D램 기술 개발 소식까지 겹치며 메모리 반도체 경쟁 심화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했다.
베이선 링 스위스 프라이빗뱅크 UBP 매니징디렉터는 블룸버그에 “하이퍼스케일러와 신흥 클라우드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아시아 반도체 공급업체에 대한 주문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안 시 코르테시 GAM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펀드매니저는 “자금조달 비용은 AI 호황에 작용하는 중력과 같다”며 “투자 지연만으로도 아시아 공급업체의 실적 전망과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은 채권·외환시장으로도 번졌다. WSJ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주 0.146%포인트 하락한 연 5.097%로 마감하며, 2월 중순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지수도 주 후반(지난 14~16일) 0.69% 떨어졌다.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매수세가 몰리는 가운데, AI 투자에 의존해 온 미국 경제의 성장 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이 FT의 분석이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전략가는 FT에 “소수 AI 대형주에 대한 시장의 쏠림 위험이 엄청나게 크다”며 “이들 기업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시장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쿤잘 갈라 페더레이티드헤르메스 글로벌 신흥시장 총괄은 블룸버그에 “AI 수요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최근 반도체주 매도세를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실제 펀더멘털 훼손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AI 신용위험이 안정되고 2027~2028년 이익 전망이 유지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