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중국 상하이 서산 골프클럽 18번 홀. 클럽하우스 사이로 고즈넉한 물길이 흐르는 그린 위에서 최혜진(27)은 또 남의 우승을 축하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뷰익 LPGA 상하이 최종 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합계 10언더파로, 인뤄닝(중국·11언더파)에 한 타 뒤진 2위였다. 우승이 확정되자 최혜진은 가장 먼저 인뤄닝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이어 중국 선수들, 인뤄닝과 친한 지노 티띠꾼(태국) 등 LPGA 정상급 선수들, 양희영과 김아림 같은 한국 선수들이 차례로 몰려와 챔피언을 축하했다. 최혜진은 그 틈을 빠져나와 쓸쓸히 그린을 떠났다.
최혜진은 1라운드부터 사흘 내내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1타 차 선두로 시작한 최종 라운드에서도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승부는 막판에 갈렸다. 9언더파로 맞서던 16번 홀에서 인뤄닝이 버디를 잡았다.
파3인 17번 홀에서는 운까지 인뤄닝 편이었다. 인뤄닝의 티샷은 그린 구석으로 가는 듯했지만, 첫 바운스가 핀 쪽으로 튀면서 홀 쪽으로 굴러갔다. 인뤄닝은 버디를 잡았고, 최혜진의 버디 퍼트는 짧았다. 차이는 두 타로 벌어졌다. 최혜진은 파5인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인뤄닝은 안전하게 세 번 만에 그린에 올려 파로 우승을 지켰다.
사실상 원정 경기였다. 갤러리 대부분이 홈 선수 인뤄닝을 응원했다.
LPGA 투어에서만 여덟 번째 준우승이다. 올해만 두 번째다. 6월 다우 챔피언십에서는 김효주와 짝을 이뤄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2위에 그쳤다. 김효주는 “혜진이에게 첫 우승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라며 미안해했다. 지난해 10월 메이뱅크 챔피언십에서는 4타 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하고도 연장전 끝에 우승을 내줬다.
최혜진은 2022년 LPGA 투어에 데뷔했다. 통산 상금은 723만 달러(약 97억원)가 넘는다. 이번 대회 준우승 상금을 더하면 100억원을 넘어선다. 우승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많다. ‘무관의 상금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따라붙는다.
최혜진 같은 정상급 선수에게 준우승은 그냥 2위가 아니다.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뒤 실패한 결과라 더 아프다. 타이거 우즈가 준우승자를 ‘첫 번째 패배자’라고 부른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끝은아니다. 아홉 번 넘어지고 열 번째에 일어선 선수도 여럿이다. 최예림은 KLPGA 투어에서 아홉 번의 준우승 끝에 지난달 첫 우승을 했다. 로리 케인도 9번 준우승한 뒤 2000년 LPGA 투어 첫 승을 거뒀고, 그해에만 3승을 쓸어 담았다. 올리버 윌슨도 9번 준우승한 뒤 2014년 DP월드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PGA 투어의 팀 클라크는 8번 준우승 끝에 2010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뒀다.
데이비드 듀발은 7번 준우승한 뒤 첫 승을 거두고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첫 우승 다음 주에 또 우승했고, 1998년과 1999년 각각 4승을 올리며 세계랭킹 1위까지 올라갔다. 캐머런 영도 첫 승 전 7번 준우승했고, 이후 3승을 더했다.
최혜진은 KLPGA 투어에서 9승을 거뒀다. 우승할 줄 아는 선수다. 엉킨 실타래만 풀면 된다. 최혜진은 우승을 못 하는 선수가 아니라, 아직 우승하지 못한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