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뜻밖의 문제가 있다. 바로 ‘만성적 결석’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 학년 수업일의 10% 이상, 약 18일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데, 최근 자료를 보면 2025년에도 미국 학생의 약 23%가 만성적 결석 상태에 해당한다고 한다. 팬데믹 이전 약 15%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캘리포니아 거주 아시안 학생의 만성적 결석률은 8.1%로 다른 여러 인종 집단보다 다소 낮기는 하지만, 이 또한 약 12명 중 1명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학생 25명이 있는 교실이라면 평균적으로 5명 이상이 한 해 동안 수업일의 10% 이상을 놓치는 셈이고, 이것이 큰 우려를 주는 것은 수업의 연속성이 끊기고 성적이 떨어지며, 학교 활동과 친구 관계에서도 점차 멀어지게 되면서 결국 결석이 또 다른 결석을 만드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인 바로 알기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신체적 질환도 있고 불안이나 우울, 친구 관계의 어려움, 따돌림, 학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아침마다 늦게 자고 일어나지 못하는 생활 리듬의 문제도 있고, 학교에서 자신이 인정받거나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따라서 한인 가정에서도 “우리 아이가 왜 이렇게 나약해졌을까”, “왜 책임감이 없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높은 기대 속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밀어붙이던 학생이 어느 순간 학교에 갈 힘 자체를 잃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매일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실패를 확인하는 경험이 되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경우 결석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심리적 회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학습 결손
만성적 결석의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학습의 연속성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학교 수업은 하루하루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배운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 내용을 쌓아 가는 구조이다. 특히 수학, 과학, 영어 읽기와 쓰기처럼 누적성이 강한 과목에서는 몇 번의 결석이 단순한 ‘수업 누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전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면 학생은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지고, 결국 학업 자신감까지 떨어질 수 있다. 또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늘어날수록 과제 수행은 어려워지고, 시험 성적은 떨어지며, 학생은 학교에 가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즉, 결석이 학습 결손을 만들고, 학습 결손이 다시 결석을 부르는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결손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은 채 누적된다는 점이다. 학생이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전 학습이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놓친 개념을 진단하고 보충하지 않으면 이후 학년에서 더 큰 학습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회복을 위한 노력
해결을 위해서 우선 파악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어떤 상황에서 결석이 시작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찾는 것이다. 월요일에 반복되는지, 특정 과목이나 시험이 있는 날에 심해지는지, 친구 관계의 변화가 있었는지, 수면 시간이 무너졌는지, 성적 하락과 함께 시작되었는지를 기록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 가라”는 말보다 이러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의 출발점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출석을 강제로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다. 먼저 아이와의 대화를 성적과 책임 추궁에서 문제 파악으로 전환해야 한다. “왜 학교에 안 가려고 하니?”보다 “학교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언제인지”, “언제부터 학교에 가는 것이 어려워졌는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담임교사, 카운슬러, 학교 행정진과 함께 출석 기록과 학업 상태, 교우 관계를 동시에 살펴보아야 한다. 결석이 반복될수록 부모가 혼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학교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석 자료를 이용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가족과 소통하며, 학생이 학교에서 안전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방향을 강조한다. 학생에게 학교가 단순히 출석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환영받고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