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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가을의 문턱에서 빚은 추석

Los Angeles

2026.10.18 20:00 2026.10.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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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희 수필가

최숙희 수필가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남가주의 늦더위가 마침내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산악회에서 추석맞이 송편 빚기 행사를 가졌다. 몬로비아 하이킹 트레일에서 짧은 산행을 한 뒤, 주차장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을 만들었다. 명절의 푸근한 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산길에는 어느새 가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가 가을볕에 반짝이는 산자락을 바라보니, 명절을 앞둔 마음도 한결 넉넉해졌다.
 
손재주가 없는 데다 올해 처음 참가하는 행사라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총무님이 준비한 재료의 양과 종류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단호박과 쑥, 흑미를 곱게 갈아 쌀가루와 섞은 반죽은 노랑, 초록, 보라, 흰색으로 곱게 빛났다. 대추와 녹두, 밤, 검정깨를 꿀과 섞어 만든 다양한 소까지, 준비한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 송편을 빚는 회원과 명절마다 송편을 빚어온 회원이 한자리에 둘러앉으니 서툰 손과 능숙한 손이 어우러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사이, 주차장은 어느새 고향의 추석 풍경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도 송편을 예쁘게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다. 선생님의 손끝에서는 반죽이 순식간에 앙증맞은 송편으로 변했지만, 내 손에서는 번번이 터지거나 찌그러졌다. 반죽을 떼어 얇게 펴서 달콤한 소를 넣은 뒤 조심스레 오므렸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 송편은 서툰 솜씨 탓에 만두인지 송편인지 어정쩡한 모양이 되기 일쑤였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으니, 맛은 얼추 같지만, 모양은 개성이 넘쳐 누구의 작품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삼단 찜기에 솔잎을 켜켜이 깔고 송편을 올려 불에 앉히자 은은한 솔향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하얀 김과 함께 퍼지는 솔향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저절로 입 안에 침이 고였고 달콤한 냄새를 맡은 벌들까지 날아들었다. 대파를 듬뿍 넣고 끓인 북엇국까지 곁들이니 속이 확 풀리면서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쫄깃한 송편과 시원한 북엇국의 맛에 취해 두 번째 찜기를 올리려는 순간, 반전이 왔다. 파크 레인저의 프로페인 가스 사용금지 구역이라는 경고였다. 그나마 벌금 티켓을 받지 않아 다행이었다. 남은 송편은 집에 가서 쪄먹게 싸 올 수밖에 없었다.
 
남가주의 지독했던 더위가 물러가고 푸른 산자락 아래에서, 비록 서툰 솜씨지만 마음을 다해 함께 빚은 송편처럼 우리 산악회의 인연도 한층 더 쫄깃하고 단단해진 듯하다. 고향에서의 추석이 가족의 북적임이었다면, 타향에서의 추석은 이렇게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올해 추석은 보름달만큼 풍성하고 유쾌한 명절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최숙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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