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등불 아래서] 이른 가을비

Los Angeles

2026.10.19 17:5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

인디언 서머의 마지막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0월, 남가주에 비 소식이 들려온다. 가을비를 기다리기엔 아직 이르지만, 올해는 엘니뇨 때문인지 하늘이 서둘러 문을 연다. ‘이른 가을비’라 불러도 좋겠다.
 
며칠 동안 물만 잔뜩 머금고 망설이던 구름이 드디어 아랫동네로 이사를 온다. 소철도, 목련도, 담벼락 귀퉁이의 민들레도 빗방울을 따라 춤을 춘다. 누렇게 말랐던 땅은 검은빛으로 젖어 들고, 우리 마음도 어느새 촉촉해진다. 빛바랜 여름에 새 옷을 입히는 남가주의 비는 달고도 달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물도 내리지 않으면 하늘에 뜬 구름일 뿐이다. 물방울이 뭉치고 뭉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질 때, 비로소 메마른 땅과 마음이 젖는다. 내려오는 일이 살리는 일이 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오르는 인생에 훨씬 익숙하다. 사다리를 놓고, 줄을 붙잡고, 위를 향해 목청껏 소리친다. 그러나 섬기려면 무릎을 꿇어야 하고, 남을 높이려면 내가 낮아져야 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열매는 떨어진 자리에서 맺힌다.
 
그렇다고 낮아짐이 곧 추락은 아니다. 땅은 물방울이 구름을 떠나기 무섭게 잡아당긴다. 그 힘에 그대로 끌려간다면 빗방울은 세상을 살리기는커녕 총알처럼 부수고 상처만 낼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물방울을 잊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떠받친다. 빗방울은 공기에 안겨 내려온다. 받쳐 주는 손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낮아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손, 은혜의 손이다.
 
이 은혜에 안긴 낙하는 낮아짐이고, 은혜를 모르는 낙하는 추락이다. 위만 올려다보는 우리가 낮은 자리의 부요를 모르듯, 받쳐 주는 손을 모르는 추락은 낮아짐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나를 낮추고 부인하는 일은 추락이 아니라 나를 받쳐 주는 은혜를 아는 일이다. 그래서 나를 버리는 일이 나를 찾게 하고, 나를 부인하는 일은 나를 바르게 사랑하게 한다.
 
세상이 탐욕으로 우리를 잡아끌어도, 은혜의 손에 싸인 빗방울은 땅을 뚫는 총알이 되지 않는다. 은혜의 품에 안겨 땅을 적시고 살리는 비가 된다. 교만은 힘을 잃고 위선은 녹아내린다.
 
이번 주 비가 내리면 잠시 창가에 서 보자. 나는 총알인가, 생명을 나누는 빗방울인가. 은혜에 싸여 떨어진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질 걱정이 없다. 그러니 처음 내딛는 낙하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고 떨어지자. 아래로, 더 낮은 자리로.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