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S 씨의 아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오더니 빨리 어머니에게 가야 한다며 S 씨를 일으켜 세운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재활병원에 있는 어머니가 넘어졌다며 빨리 오라고 전화했다고 한다. 본인이 전화하신 것으로 보아 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음식이 금방 나올 테니 가지고 가라고 권유를 했지만 서둘러 갔다.
주변에 연로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많다. 자주 병원을 드나드는 분들도 있지만, 아예 재활병원이나 양로병원에 들어가신 분들도 있다. 부모님 나이 80~90대면 자녀들도 60~70대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마음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노인의 병시중에 자식의 몸과 마음도 지쳐간다. 그 대안이 양로시설이다.
노인에게 양로시설 입주는 고려장이며 지옥이다. 거기 들어가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병들고 나이 들어 양로시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독립된 삶을 살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으로 살기에는 몸이 너무 쇠약하기 때문에 양로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결국 거기서 죽어 나올 수밖에.
세상사라는 것이 다 마음먹기 달렸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 부모님도 양로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병원에 가면 여러 모습의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시름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노인, 병원 스태프들에게 끊임없이 불평하는 노인, 어디 외출이라도 할 것처럼 깨끗한 옷을 입고 화장까지 하고 앉아 있는 노인, 침실 옆 책장에 책이 가득한 노인도 있었다.
노인들의 로망은 죽는 날까지 내 집에서 살다 죽은 것이라고 한다. 내 바람도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세상의 어떤 자식이 부모를 양로병원으로 내몰고 싶겠는가. 하다 보니, 상황이 그렇다 보니, 할 수 없이 그런 시설로 모시는 것이다.
노인을 아파트에 혼자 살게 하거나, 무리해서 모시고 사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지 싶다. 아는 직장 동료의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하다 결국 고독사 했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부엌 바닥에 쓰러져 돌아가신 노인을 발견한 것이다.
L 씨의 어머니는 한때 위독해서 미국에 사는 딸들이 번갈아가며 한국에 다녀왔는데, 다시 소생해 이제는 자신을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자식들을 원망한다고 한다. 자식들은 이제 은근히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S 씨의 장모는 100세고, L 씨의 어머니는 90대 중반이다.
‘생로병사’라 하지 않았나. 누구나 늙으면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내 앞가림 못 하게 되면 자진해 양로병원에 들어갈 생각이다. 누군가 가끔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사다 주면 좋고, 가족과 친구가 찾아와 말동무해 주면 좋겠지만, 아니면 나 혼자 책 보고 바둑 두며 소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