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지금 ⑭이영일 변리사] 대기업 연구원에서 변리사로 아마존 셀러·K-뷰티 고객 급증 AI 관련 특허 상담도 크게 늘어 “브랜드 상표 출원이 최우선”
김진정 변호사 그룹에서 특허·상표 업무를 담당하는 이영일(사진) 변리사는 9년 전만 해도 한국 대기업 연구소의 엔지니어였다. 지금은 아마존 셀러부터 K-뷰티 브랜드까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특허와 상표 업무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공학자에서 지식재산권 전문가로의 변신. 시작은 우연한 제안이었다.
한국 대기업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가 김진정 변호사 그룹에 합류 오퍼를 받은 건 2017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는 회사였지만 그는 “분야가 너무 달랐고, 이민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며 이를 거절했다.
1년 뒤 같은 제안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의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연구소 생활에 지쳐 있었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커진 뒤였다. 몇 달을 고민한 끝에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부터 특허·상표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고객 영업부터 케이스 관리, 마케팅까지 여러 업무를 맡으며 지식재산권 업계의 생리를 익혔다. 그러다 상표 출원 업무에 눈길이 갔다. 지식재산권 업무의 중요한 한 축이었지만 당시에는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었다. 직접 전문 분야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학도 출신이라는 강점도 있었다. 미국 특허 대리인 시험을 준비했고 합격했다.
자격 취득 이후 변화는 빨랐다. 1년 만에 담당하는 지식재산권 업무가 전담 직원을 따로 둬야 할 정도로 늘었다.
“적극적으로 마케팅한 것도 아닌데 소개를 통해 고객들이 계속 찾아왔다.”
처음에는 상표 출원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기존 고객들 사이에서 특허 출원까지 함께 맡아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상표와 노동법, 상법 등이 얽힌 복합적인 사안은 로펌 내 변호사들과 협업해 처리한다.
최근 그의 책상에서 가장 뚜렷해진 변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마존에서 상품을 파는 ‘셀러’가 늘어난 것이다. 초기 고객 가운데 한 명이 아마존 셀러로 활동하다 판매 관련 교육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셀러들과 연결됐다. 온라인 판매에서 브랜드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상표 출원 문의도 꾸준히 늘고 있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AI)이다. 최근에는 AI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특허 상담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AI 기술이나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특허 문의가 정말 많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특허 자체를 어렵게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AI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느 정도 구체화한 뒤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
AI가 발명의 문턱뿐 아니라 특허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까지 낮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흐름도 최근 뚜렷하게 달라졌다. 몇 년 전까지 한국 식품 브랜드의 상표 출원 문의가 압도적이었다면, 지금은 K뷰티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다. 평범한 화장품·향수 브랜드로 시작했다가 급격히 성장해 서울 성수동에서 대규모 팝업으로 주목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는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 상표부터 출원해두는 것이 이제는 상식에 가깝다”고 전했다.
9년 전까지 그의 책상 위에는 엔지니어링 도면과 연구 자료가 놓여 있었다. 지금은 아마존 셀러의 브랜드와 K-뷰티의 상표, AI 기술의 특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분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공통점도 있다. 기술을 이해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변리사는 “이 일을 선택한 뒤 하루도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온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공학자에서 지식재산권 전문가로 새 길을 택한 그의 책상 위에는 지금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매일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