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 중앙역 인근에서 시위대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이날 이탈리아 곳곳에서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져 수십 명이 다쳤다. [신화=연합뉴스]
폭력과 약탈로 얼룩진 시위대의 성난 함성이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프랑스가 국가비상사태 가능성까지 밝힌 가운데, 이탈리아와 벨기에·알바니아에서도 약탈·방화·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선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텐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선 지난 17~18일(현지시간) 5000명이 나선 시위에서 복면을 쓴 이들이 각종 매장에 침입해 상품을 약탈했다. 두오모 광장은 돌·폭죽·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와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 간 충돌이 시가전을 연상할 정도였다고 유로뉴스는 전했다. 19일 명품 업체가 밀집한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에선 에르메스 등이 약탈을 우려해 진열대에서 상품을 치웠다.
토리노·볼로냐·베르가모 등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시위는 권리지만, 도시를 불태우는 건 권리가 아니다”며 군병력 500명을 밀라노에 보내기로 했다.
벨기에서도 수도 브뤼셀과 동부 리에주를 중심으로 교육예산 삭감 등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차량을 전복하고 불을 질렀다. 알바니아에서도 시위대가 18일 집권 사회당 당사 유리창을 깨뜨리고 내무부 청사 입구에 불을 질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선 주택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마드리드의 한 아파트에서 70년간 살다가 지난달 말 강제 퇴거된 이후 7일 숨진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 사건을 계기로 약 50개 도시에서 저렴한 주택 공급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도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주거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김경진 기자
동시다발적 시위의 배경엔 유럽의 위기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은 공공서비스 확대와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유럽의 국부는 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1%로 전망했다. 이탈리아(137.1%), 프랑스(115.6%), 벨기에(107.9%)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유럽연합(EU) 평균(81.7%)을 훌쩍 넘어선다. GDP 대비 세금부담률도 프랑스(44%), 이탈리아(43%), 벨기에(43%)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보다 높아 증세도 어렵다.
이 와중에 늘어난 이민자는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 EU 27개 회원국의 외국 출생 거주 인구는 2015년 4429만 명에서 2025년 6472만 명으로 46.1% 급증했다. EU 역외 출생 거주자(4670만 명)는 전체 인구의 10.4%다. 가뜩이나 주택이 부족한 도시에 임대주택과 난민 시설 수요가 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이민자가 저임금 노동시장의 고용 조건을 악화한다고 우려한다.
이는 강경우파의 세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이 “수십 년간 통제받지 않은 이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하는 등 강경우파 정치인들이 이번 시위의 주동세력이 이민자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