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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1년간 1조 챙긴 ‘사무장병원’…그 뒤엔 코스닥 상장사 있었다

중앙일보

2026.10.20 13:00 2026.10.2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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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동안 법인을 통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1조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코스닥 상장사의 전·현직 임원이 무더기 송치됐다. 사무장병원 사건으로는 압도적인 역대 최대 규모다. 상장사가 연루된 것도 알려진 사건 중 전례가 없다.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지난달 30일 유전체 분자진단 전문기업 ㈜랩지노믹스의 전·현직 임원 등 31명을 의료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공소청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기 편취 금액은 요양급여 약 8200억원, 의료급여 약 6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검사로 얻은 부당이득 2000여억원까지 더하면 전체 규모는 1조원대에 이른다. 경찰은 지난 7월 랩지노믹스 사옥과 주요 피의자들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랩지노믹스 CI. 사진 랩지노믹스

랩지노믹스 CI. 사진 랩지노믹스


랩지노믹스는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비의료인인 대표 등이 의료인 2명의 명의를 빌려 수탁의료기관에 해당하는 ‘랩지노믹스진단검사의학과의원’(이하 랩지노믹스의원)이라는 사무장병원을 만들어 불법 운영해 온 혐의를 받는다. 사무장병원은 의료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료인 명의만 빌려 운영하는 불법 의료기관을 말한다. 이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다.

운영 구조도 기존에 의사 이름만 빌려 병원을 만들고 진료를 보는 일반적인 사무장병원과 달리, 복잡하고 치밀했다. 환자가 동네병원(위탁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으면, 동네병원이 환자의 몸에서 검체를 채취해 랩지노믹스의원으로 보낸다. 검체를 받은 랩지노믹스의원은 검사를 진행한 뒤 결과를 동네병원에 회신한다. 동네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요양급여와 의료급여를 청구해 돈을 받는다. 이후 동네병원은 랩지노믹스의원과 사전에 맺은 계약에 따라 건보공단에서 받는 돈의 일부를 정산해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국민이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가 이런 방식으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이와 함께 랩지노믹스의원은 코로나19가 유행이던 당시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체 검사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로 인한 부당이득만 해도 200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일 NICE평가정보 조회 결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랩지노믹스의원은 지난 2001년 개업해 2023년 12월 기준 매출액은 약 806억원이었다. 한 채용 정보 사이트에는 ‘코로나19 검사를 포함한 다양한 진단검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로 소개됐다. 현재는 폐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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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료인은 물론 명의 대여한 의사도 처벌”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모습. 연합뉴스


사실상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랩지노믹스는 지난 2002년 설립돼 산전 기형아 검사, 암 유전자 검사 등 유전체 분자진단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랩지노믹스가 개발한 응급용 진단키트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으면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2021년 매출액은 약 2000억원에 달했다. 2020년 여름에는 주가도 4만원대까지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하락해 지난 8월엔 주가가 1000원 미만으로 떨어졌고, 코스닥시장본부가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랩지노믹스 측은 “의료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현재 수사기관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관계 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고, 필요한 설명과 확인 절차를 충실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자격을 보유한 장세창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수탁검사기관이 의료기관의 형태로 운영되면서 비의료인이 그 시설·인력·자금·수익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면 일반 사무장병원과 똑같이 의료법 위반이 성립한다”며 “병원을 운영한 비의료인은 물론이고, 명의를 빌려준 의사 또한 비의료인과 공모했다면 면허 대여 금지 위반과 사기 공범의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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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지나도 해결 안 된 ‘사무장병원’…범죄수익 환수도 어려워

사무장병원은 보건의료계의 해묵은 골칫거리다. 사무장병원은 2007년 경기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가 대한의사협회 불법의료신고센터에 자진 신고하면서 의료계와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화재로 사망자 47명, 부상자 145명이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이 사무장병원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무장병원 문제가 개별 병원의 불법 행위를 넘어 대형 재난과 제도 이슈로까지 부각됐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무장병원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지난 1일 진료비 일부를 돌려주는 이른바 ‘페이백’ 수법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요양급여 24억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의료법 위반, 사기)로 한방병원장 등 5명을 검거하고 이 중 1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엔 부산 해운대구에서 요양급여 약 13억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사무장병원 행정원장 등 4명이 기소됐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사무장병원은 적발되더라도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쉽지 않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불법개설기관(사무장병원·면허대여약국)은 1805곳으로, 환수 결정 금액은 약 2조9162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실제 징수된 금액은 약 2563억원으로 환수율은 8.79%에 그쳤다. 건보공단은 환수율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체납자의 70% 이상이 무재산자이고, 수사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재산을 은닉·처분해 채권 확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러는 사이 직장가입자 기준 건강보험료율은 2020년 6.67%에서 올해 7.19%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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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특사경 도입, 관련 법 국회 계류 중

16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무장병원 문제는 국정감사 단골 소재다.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보공단 행정조사부터 경찰 수사까지 1년 넘게 걸리는 탓에, 그사이 불법기관들은 과잉 진료와 허위 청구로 건보 재정을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서 의원실이 건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불법개설기관 관련 수사에는 평균 13.5개월이 걸렸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건보공단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 도입이다. 특사경을 도입하면 수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과 의료계는 수사권 남용과 기관 이기주의 등을 이유로 특사경 도입에 반대하고 있어 관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11월 20일까지 두 달간 사무장병원을 비롯한 불법개설기관 집중·자진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신고로 불법 개설이 확인되면 최대 30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무장병원은 의료 수익 최대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져 의료 윤리나 사회적 목적에서 벗어난 부분이 많다”며 “의료기관 심사·평가를 통한 견제와 감독이 이뤄지지 않기에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이아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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