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좋은 점은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괜찮고 맘에 드는 사람 만나면 ‘멋지세요’라고 고백한다. 아무도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반짝이는 언어로 빛나는 사고의 언덕에서 생의 못다한 인연을 나눌 수 있다면 축복이고 기쁨이다. 싫은 사람은 흘러 보내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지나치고,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은 인연을 끊으면 된다. 선택이 생을 자유롭게 한다.
인생의 사계절은 끊임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에서 병사 에른스트는 자신이 풀어주었던 게릴라 요원의 총에 맞고 쓰러진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편지가 물 위로 흘러가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불꽃처럼 뜨거웠던 인생의 여름을 정리했다. 연락을 끊고 어제를 지우는 일은 쉬웠다. 무엇을 위해, 어떤 색깔로 남은 생을 채색할 것인지 깨달으면 생의 방향이 뚜렷해진다. 인생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일 뿐이다. 답신을 안 하면 사람들은 나를 잊어준다. 과일 나무 심고 채소밭 가꾸며 ‘귀양살이’ 한다고 했다가 ‘유배생활’로 업그레이드했다. 두문불출, 작품 쓰고 그림 그리고, 꼭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사는 날들은 행복하다. 무거운 지게를 벗어버리면 나비처럼 가볍게 날 수 있다.
오색으로 빛나는 햇살에 풍성하게 익은 과일은 향기롭고 달콤하다. 싱그러운 가을, 시골 집 마당은 알곡으로 넘쳐났다. 소작농들과 곡식을 나눌 때 어머니는 되를 깍지 않았다. 옥이 언니는 무우 밭에서 큰 것만 캐고 작은 것들은 남겼다. 삼만이 아재는 짚단을 쌓아 한 겨울 불을 지필 땔감을 장만한다. 추운 겨울이 몰아쳐도 가슴은 늘 따스했다.
한 번뿐인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인생은 초연도 리허설도 없다. 선택의 여지마저 주지 않는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에 불행의 씨앗을 뿌린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한 사람은 그냥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다’고 했다. 당시 헤겔은 이성철학의 대가였고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철학자여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쇼펜하우어는 경험하는 세계의 겉모습은 표상이고, 그 세계의 가장 깊은 본질은 의지이며, 끊임없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지에 대한 인식과 그 부정에 있다고 설명한다.
표상은 추상적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것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의지는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과 결핍,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모든 상처와 결핍으로 부터 벗어나는 길이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지 물어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되어 나만의 길을 찾아가라는 뜻이다. 매일 멋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는 맛난 식사를 준비한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 되더라도 두려움 없이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생의 축제는 혼자서도 행복하다.
운명은 가끔 뜬금없이 문을 두드린다. 사는 것이 흔들리는 바람이라 해도 가장 축복받는 날은 지금 이 순간이다. 잠시라도 시간의 흔적을 세월 속에 담을 수 있다면, 남은 날들은 더욱 치열하고 눈부시게 살 수 있다
영혼을 춤추게 하라. 기억 속의 어제는 아름다웠다. 희망의 불꽃은 내일로 타오른다. 한번뿐인 인생, 운명에게 꽁지를 잡히지 말라. 두려움은 모든 가능성을 몰락시킨다. 치열하고 눈부시게 오늘을 살아가라. 자유가 삶을 충족하게 만든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