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서울 평창동의 서울아트센터 도암에서 더중앙플러스의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손민수. 올해 음반을 발매하고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바흐의 평균율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진영 기자
“음반 녹음에 새 소리가 들어갔더라고요. 사실 저는 듣지 못했고 아내가 발견했는데, 들어보고 ‘바로 이거다!’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50)가 녹음한 새로운 음반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몇 군데 들어있다. 그가 연주한 바흐의 음악과 함께 우연히 녹음된 짧은 소리다. 보통은 소음이라 생각해 수정하겠지만, 손민수는 그대로 뒀다. “바흐의 세계와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자연을 보여주기에 좋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량을 높이고 유심히 듣는다면 새의 노래를 찾아낼 수도 있다.
20일 더중앙플러스의 아티스트 토크에서 손민수는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대곡인 평균율 1권 24곡 전곡의 녹음과 연주에 대해 설명했다. 더중앙플러스의 ‘더클래식 프리미엄 멤버십’ 구독자와 만난 이 행사는 서울 평창동의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열렸다.
손민수는 지난 4월 독일의 알프스 지역인 엘마우(Elmau)에서 바흐의 평균율을 녹음했다. 피아노 연주에 맞춰 새의 노래가 들린 이유다. “하루에 5~6곡씩 녹음하며 많이 힘들었다. 음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민수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대자연 속을 걸었다고 했다. “거대한 산과 별빛 같은 것들을 보면서 걸으면 바흐에 대한 생각이 정리됐다.” 그는 “깊은 사유를 담은 바흐의 음악은 현대 사회에 해독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바흐가 30대와 50대에 각각 24곡을 작곡한 평균율 곡집 두 권은 건반 악기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금의 조율법인 평균율을 갖춘 조성을 모두 이용한 실험적 작품이자 서양 음악사의 중요한 형식인 푸가(fuga)의 경지를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2020년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32곡) 녹음 이후 6년 만의 음반으로 손민수는 바흐의 평균율을 선택했다. “학생일 때부터 숙제 같았는데 오랫동안 음악 속의 엄격한 질서가 두렵기도 했다”는 그는 18세부터 배웠던 스승인 러셀 셔먼(1930~2023)의 말을 전했다. “바흐 평균율을 연주하다 악보를 잊었을 때 잘 해결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진짜 실력자”라는 표현이었다. 바흐의 촘촘하고 엄격한 구조를 강조하는 의미다.
손민수는 바흐의 평균율 1권 24곡 중 8곡을 연주했다. 장진영 기자
그런 그가 바흐 평균율 전곡의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최근에는 내 목소리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작품이 절실해졌다고 했다. “언제나 빠르게 답장해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 사회에 바흐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성찰을 강요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손민수는 이날 바흐 평균율 1권 중 총 8곡을 연주했다. 그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18번째 작품을 연주하기에 앞서 “지극한 고통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바흐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또 “한평생 신을 경외했고 기쁨을 노래했지만 이런 깊은 슬픔도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손민수는 이번 음반과 연주를 스승인 러셀 셔먼과 변화경 부부에게 헌정했다. 손민수가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사사한 두 피아니스트는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이들이다. “셔먼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후 변화경 선생님이 악보를 건네주셨다. 거기에 선생님이 하나하나 남긴 메모와 흔적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악보와 메모를 이날 청중에게 공개했다. 러셀 셔먼은 바흐 평균율의 2번째와 17번째 곡에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남겼다. 각각 ‘줄리어스 시저’의 한 구절인 ‘브루투스, 너마저도?’, 또 다른 작품 ‘팔스타프’에서 영감을 받아 셔먼이 직접 쓴 시(詩) 두 편이다. 손민수는 “선생님의 메모 그대로 음악을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감을 받아 내 상상력을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객석을 채운 더클래식 멤버십 구독자들은 그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좋은 피아노 연주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손민수는 “피아니스트의 전성기였던 20세기 초반과 비교해보면 요즘 연주자들에게는 정답만 있고 개성이 없다”며 “동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좋으니 자기 생각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는 10대 시절부터 국내외 콩쿠르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미국으로 유학한 후 북미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017년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구를 시작해 리사이틀 9회와 녹음을 2020년 마쳤다.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2023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22년 반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어려서부터 가르친 스승이다.
바흐의 평균율 1권을 명문 음반사인 하이페리온에서 발매한 손민수는 이달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곡을 연주한다. 그는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 한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지는 평균율 2권의 24곡을 이어서 녹음하고 연주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적어도 2년은 걸릴 듯하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27일 공연에는 더클래식 프리미엄 멤버십을 구독한 VIP 독자들이 초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