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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문화난장] ‘실미도’와 ‘암살자(들)’

중앙일보

2026.10.21 08:16 2026.10.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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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영화에서처럼 실미도 부대원들이 흉악범이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유족들은 20여 년 동안 무기수·사형수의 가족으로 꼬리표를 붙이고 이중삼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실미도희생자유족회 회장 임충빈(69)씨는 21일 통화에서도 여전히 울먹였다. 영화 ‘실미도’(2003) 개봉 이후 20년 넘도록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다.

‘실미도’ 23년 만에 자막 수정
“공작원 중 사형수·무기수 없다”
유족 “영화 때문 흉악범 꼬리표”
영화적 상상력에 긴 세월 고통

영화 ‘실미도’. 사형수들을 모아 북파공작원으로 훈련시키는 장면. [사진 시네마서비스]

영화 ‘실미도’. 사형수들을 모아 북파공작원으로 훈련시키는 장면. [사진 시네마서비스]

지난달 영화 ‘실미도’의 도입부 자막이 수정됐다. 영화에서 부대 공작원들을 특수범죄자·사형수·무기수로 묘사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다. 새 자막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은 실미도 부대 공작원 중에 사형수·무기수가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 민간인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다”고 밝히고 “영화로 인해 고통받으신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과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시했다.

영화가 왜곡한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23년 만의 첫발이다. 하지만 임씨는 “자막만으론 한계가 있다. 몇 사람이나 보겠나. 영화사 측의 공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폭력 희생자에게 ‘인간쓰레기’ 낙인
그의 오빠는 영화 ‘실미도’가 다룬 684부대의 공작원이었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내려온 1·21사태 이후 북한 침투 작전을 위해 창설된 부대다. 민간인 31명을 모집해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 실미도에서 3년4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훈련 기간 중 7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가혹 행위의 수위가 높았다. 견디다 못한 공작원들이 부대를 탈출한 건 1971년 8월. 이들은 서울 대방동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수류탄을 터뜨려 집단 사망했다. 생존자는 단 4명이었고, 임충빈씨의 오빠도 이 중 하나였다. 생존자 4명은 1971년 12월 공군 군법회의에서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아 이듬해 3월 총살형을 당했다. 당시 그의 오빠 나이 스물넷이었다.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해 684부대 공작원들은 모두 “사형수거나 사회 밑바닥에서 아무 희망도 없이 살던 인간쓰레기들”(교육대장 역 안성기 대사)로 묘사됐다.

하지만 2005년 국방부 과거사위에서 조사2과장으로 실미도 사건을 조사한 안김정애씨에 따르면, 공작원 중에 흉악범은 없었다. 사형수 중에서 선발할 계획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가 사형수는 형 집행 이후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해야 하는데 특수부대에 선발되면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사회적 문제가 된다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임충빈씨의 오빠도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고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대전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 684부대 공작원 모집책을 만나 임무만 완수하면 충분한 보수를 주고 미군 부대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넘어간 것뿐이었다.

가족들은 그가 실미도 부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영화 개봉 이후 684부대 생존 훈련 교관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됐다.

“3남5녀의 맏이였던 오빠가 행방불명되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달라고 대통령한테 편지도 썼고요, 굿도 여러 번 했어요. 부모님 모두 오빠 소식을 모른 채 돌아가셨는데 꼭 오빠를 찾으라는 게 유언이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오빠는 그렇게 귀한 존재였다. 그 오빠가 ‘인간쓰레기’로 나오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임충빈씨는 “이게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돌아봤다.

2017년 실미도 공작원 합동 봉안식에서 한 유가족이 공작원들의 사진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실제 실미도 부대에 사형수는 한 명도 없었다. [연합뉴스]

2017년 실미도 공작원 합동 봉안식에서 한 유가족이 공작원들의 사진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실제 실미도 부대에 사형수는 한 명도 없었다. [연합뉴스]

현실에 대한 허구의 책임 어디까지?
영화 ‘실미도’는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다. 최종 관객수 1108만 명을 기록하며 당시 국민 4명 중 1명꼴로 관람했다. 그 많은 사람이 대부분 이 영화를 통해 실미도 사건을 처음 알게 됐고 영화 속 설정을 사실로 믿어버렸다. 임충빈씨는 “아직도 떳떳하게 실미도 희생자의 유족이라고 나설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영화는 허구의 장르다.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모든 장면을 사실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순간, 영화적 상상력은 스크린 밖 현실과도 관계를 맺는다. 영화 ‘실미도’의 허구는 실제 684부대 공작원들에 대해 범죄자 출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했고, 이 때문에 유가족들을 오랜 세월 고통스럽게 했다.

실미도 희생자 유족들이 영화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과 제작사 등을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적시 등의 혐의로 고소한 적도 있다.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유족 측이 패소했는데, “표현·창작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창작의 자유와 창작자의 책임은 자주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다. 최근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관객 33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암살자(들)’ 역시 같은 딜레마를 드러낸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중정(중앙정보부) 윗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그렸다. 관객에 따라 ‘중정 윗선’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생각할 여지까지 열어둠으로써 패륜 논란도 일었다.

영화에는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힘도 있다. 영화가 감당해야 할 현실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23년 만에 새 자막을 붙이게 된 영화 ‘실미도’가 흥행 감사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암살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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