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소방재난본부 119특수대응단 헬기장에서 119항공대원과 해운대백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 의료진이 '고위험 임산부·신생아 이송 항공대원·의료진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뉴스1
김모(33·서울 용산구)씨는 지난해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일찌감치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자연분만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긴 진통과 회음부 절개가 두려웠고, 진통을 겪다 응급수술까지 했다는 주변의 경험담도 마음에 걸렸다. 김씨는 “수술도 아프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을 기다리는 게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국내 분만 10건 중 7건이 제왕절개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임신이 늘면서 의학적으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증가한 데다 산모의 선호 변화, 분만 인력 부족과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등이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분석 대상 분만 24만2103건 중 제왕절개는 16만9891건(70.2%)이었다. 2016년 42.5%에서 매년 올라 2019년 절반을 넘었고, 지난해 처음 70%를 넘어섰다.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자료와 건강보험·의료급여 청구자료를 연계한 분석 결과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 기간 산모의 연령도 높아졌다. 전체 분만에서 35세 이상 산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30.6%에서 지난해 41.2%로 늘었다. 전자간증(임신중독증) 관련 진단이 동반된 제왕절개도 같은 기간 2585건에서 3754건으로 증가했다.
김의혁 일산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결혼과 출산 시기가 늦어지면서 고령 임신이 증가하고 있다”며 “고령 임신은 임신성 당뇨병이나 고혈압성 질환 등 임신 합병증의 위험을 높일 수 있고, 이러한 요인들이 분만 방식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태아 상태나 태반 위치에 따라 수술이 필요하거나,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분만 진행이 원활하지 않거나 태아 상태에 이상이 생겨 응급수술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김 교수는 “고령 임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왕절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제왕절개율 상승은 젊은 산모에게서도 나타났다. 34세 이하 산모의 제왕절개율은 2016년 39.2%에서 지난해 67.7%로 높아졌다. 초산의 제왕절개율도 같은 기간 45.6%에서 74.8%로 상승했다.
분만 방식에 대한 산모들의 선호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원 산부인과 원장은 “요즘 산모들은 진통을 굳이 왜 견뎌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임신 초기부터 ‘저는 제왕절개할 거예요’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의료 여건도 영향을 미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의정 사태 이후 전공의 등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응급분만에 대처하기 어려워졌고, 마취과 인력 부족으로 무통주사를 놓기 어려운 상황도 생겼다”고 말했다. 무통주사 없이 진통을 견뎌야 한다면 산모로서도 자연분만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다. 이 전문의는 “이전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자연분만을 권했는데, 요즘에는 굳이 권하지 않는다”며 “최선을 다했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고액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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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제왕절개율 격차도 벌어졌다. 지난해 산모 거주지 기준 제왕절개율은 강원 76.8%, 충북 76.7%, 부산 75.9% 순으로 높았다. 광주는 55.2%, 제주는 61.6%였다. 최고·최저 지역 간 격차는 2016년 12.9%포인트에서 지난해 21.6%포인트로 커졌다. 분만 인력과 야간·응급분만 대응 여건의 차이가 이런 격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줄어드는 가운데, 남은 의료기관도 낮은 수가와 인력 부족으로 24시간 분만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자연분만을 원하는 산모도 진통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보다 미리 날짜를 정해 제왕절개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윤 의원은 “제왕절개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고위험 임신 증가와 산모의 선호 변화, 분만 인력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산모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적합한 분만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부는 분만 의료인력과 의료사고 안전망을 강화해 산모의 선택권과 산모·신생아의 안전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