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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아르셀로미탈은 왜 배터리 스타트업에 투자했을까

중앙일보

2026.10.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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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테크 키우는 전략적 자본


지현석 소풍벤처스 투자본부 파트너·이사

지현석 소풍벤처스 투자본부 파트너·이사


2021년 여름, 세계적인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이 미국의 한 배터리 스타트업에 2억4000만 달러(약 2800억원) 규모 투자를 이끌었다. 회사 이름은 폼 에너지(Form Energy). 철강회사가 왜 배터리 회사에 투자하게 됐을까.

답은 배터리 ‘안’에 있다. 폼 에너지의 배터리는 철이 녹슬었다가 다시 쇠로 돌아오는 과정을 활용해 전기를 저장한다. 원료가 ‘철’인 셈이다. 아르셀로미탈은 투자와 함께 배터리용 철 소재를 같이 개발하고 공급하기로 했다. 스타트업은 원료와 검증 파트너를 얻었고, 철강회사는 미래의 큰 고객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2월, 구글이 미네소타에 짓는 데이터센터에 폼 에너지의 배터리를 쓰기로 했다. 저장 용량으로는 세계 최대급이다. 녹슨 철이 인공지능(AI)의 전기를 지키게 된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나 완성차 회사는 종종 소재·부품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한다. 품질 좋은 소재를 안정적으로, 유리한 가격에 공급받기 위해서다. 투자 이후에는 발주 물량을 적극적으로 열어주고 기술 개발도 함께 진행한다. 파트너의 성장이 곧 자기 사업의 성장이기 때문이다. 앞서 본 아르셀로미탈의 투자가 바로 이런 ‘동업’이다. 이들이 전략적 투자자(SI)다.

반면 벤처캐피털 같은 투자자는 시장의 성장성을 본다. 이들은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어 직접 매출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 대신 여러 잠재 고객과 파트너를 연결하고 기업가치를 키운다. 든든한 조력자인 셈이다. 이들이 재무적 투자자(FI)다.

둘 다 소중한 자금이다. 다만 스타트업은 투자금의 크기뿐 아니라 함께 얻을 기회도 따져 파트너를 골라야 한다.

카카오 임팩트재단과 소풍벤처스가 지난달 제주 카카오 스페이스닷원 멀티홀에서 개최한 ‘2026 기후테크 스타트업 서밋’ 참석자들이 ‘판을 여는 자본: 전략인가, 수익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소풍벤처스]

카카오 임팩트재단과 소풍벤처스가 지난달 제주 카카오 스페이스닷원 멀티홀에서 개최한 ‘2026 기후테크 스타트업 서밋’ 참석자들이 ‘판을 여는 자본: 전략인가, 수익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소풍벤처스]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략적 자본이 유난히 절실하다. ‘첫 고객’을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발전소와 전력망을 운영하는 쪽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쉽게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기술을 검증하려면 먼저 현장에서 써봐야 한다. 검증을 요구하면서 정작 검증받을 기회는 주지 않는, ‘경력직 신입’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자금 흐름도 녹록지 않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발 전력 수요 덕에 올 상반기 글로벌 기후테크 투자는 크게 반등했지만, 돈은 검증된 큰 회사로 몰렸다. 실리콘밸리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선 상위 10건의 투자가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실증 문턱 앞에서 초기 스타트업이 기댈 곳은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필자가 속한 소풍벤처스의 포트폴리오사 모닥불에너지는 히트펌프를 ‘구독’ 방식으로 공급한다. 히트펌프는 공기 중의 열을 끌어모아 난방과 온수를 만들어주는 설비다. 정수기를 렌털하듯, 숙박시설이나 복지시설은 설치비 부담 없이 매달 요금만 내고 쓸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전력 수요관리 기업 그리드위즈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히트펌프를 수요반응(DR)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지분 투자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 자본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되면 스타트업은 새 수익원과 함께 실증 이력을 얻고, 파트너는 새로운 전력 자원을 얻는다. 신뢰가 쌓이면 지분 투자라는 ‘동업’의 형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지난달에는 한 국내 금융지주 계열사가 이 히트펌프 구독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사업이 검증되자, 수익을 따지는 금융 자본이 뒤따라온 것이다.

지난 7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대전환(K-GX)은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연다. 정부는 2035년까지 재정 200조 원과 기후금융 790조원 등 1000조원 이상을 녹색전환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유망 기후테크 기업 200곳을 골라 연구개발과 실증을 묶어 지원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방향은 정해졌다. 남은 과제는 이 자금이 실제 ‘첫 고객’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대규모 자금이 검증된 대형 사업에만 머문다면, 경력직 신입의 벽은 그대로 남는다. 공공이 실증 현장을 열고 먼저 구매자가 되어주면, 그 이력을 바탕으로 민간의 전략적 자본과 재무적 자본이 차례로 뒤따를 수 있다.

국내에서도 기후테크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털, 기술지주, 에너지 기업의 벤처투자 조직, 정책금융 기관 등이 저마다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전략인가, 수익인가’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전략적 자본이 첫 문을 열면, 재무적 자본이 그 길을 넓힌다. 기후테크를 키우는 일은 그 첫 문을 누가, 얼마나 빨리 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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