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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군위육표(?爲肉標)’, 꿀벅지로 100세 건강을

Los Angeles

2026.10.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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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

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

최근 롱비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연습량이 부족했던 터라 하프코스를 신청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며 완주선(Finish Line)을 통과했다.
 
이제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건강한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에게 달리기는 다이어트나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치료제’이자 ‘이정표’였다.
 
2003년, 에베레스트 훙치원정대 의료팀 합류를 앞두고 좌측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6개월간의 치료에도 후유증이 남아 원정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삶의 큰 전환점이 되어준 것이 바로 한의학적 치료였다. 매일 위장 기능과 다리의 기력을 북돋우는 데 전통적으로 활용되는 핵심 혈자리인 ‘족삼리(足三里, ST36)’에 자가 뜸을 뜨며, 약수터까지 왕복 3km를 매일 달렸다. 그 작은 첫걸음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원정을 무사히 마친 후에도 큰 고민이나 시련이 찾아오면 일단 달리는 습관이 생겼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미국으로의 가족 이민을 결심할 수 있었던 용기 역시 마찬가지다. 첫 5km로 시작해 1km씩 거리를 늘려가던 그 단단한 달리기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셈이다.
 
처음 뛰기 시작할 때는 금세라도 토할 것 같이 숨이 차오르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가슴속 답답함은 신기하게도 조금씩 풀려나간다. 달린다고  현실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기는 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만들어주었다.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은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며,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의 몸으로 증명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일과 학업, 삶의 모든 영역으로 기분 좋게 번져나간다.
 
한의학 고전인 ‘동의보감(東醫寶鑑)’ 외형편 육문(肉門)에는 ‘군위육표(  爲肉標)’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통 한의학에서는 근육과 살집이 충실하게 유지되는지 여부를 인체의 전반적인 영양 상태와 기혈(氣血)의 성쇠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로 보았다. 여기서 ‘군(     )’이란 팔꿈치와 무릎 뒤쪽에 덩어리처럼 도드라진 살을 말한다. 그리고 이 ‘군’을 인체 건강을 살피는 중요한 표식(標)으로 삼았다. ‘동의보감’에서는 오장이 손상되어 전신의 살이 빠지는 것을 치료하기 어려운 증후로 보았다. 그만큼 옛 선조들은 근육과 살의 상태를 건강과 생명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겼다.
 
이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에게 허벅지 근력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노년의 낙상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고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손상통계에 따르면, 응급실 손상환자의 약 40%가 추락 및 낙상으로 인한 환자였으며, 낙상으로 사망한 환자 중 80세 이상이 42.5%를 차지했다.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 등은 장기간의 침상 생활로 이어져 2차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튼실한 허벅지, 즉 꿀벅지를 만드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달리기’다. 만약 본격적인 달리기가 힘에 부친다면 ‘슬로우 조깅’을 적극 권한다. 숨이 차지 않고 옆 사람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페이스로, 보폭을 좁게 하여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는 것이 핵심이다.
 
하루 10~30분 정도, 처음에는 1~3분씩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며 점차 시간을 늘려가면 된다. 슬로우 조깅은 심폐 기능 향상과 혈당 조절은 물론, 하체 근력과 지구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적절한 근력운동과 균형운동을 병행하면 근감소증과 낙상 예방에도 더욱 효과적이다.
 
벌써 가을이다. 건강한 100세를 만드는 ‘꿀벅지’를 위해, 올해가 가기 전에 걷기든 슬로우 조깅이든 꼭 첫발을 내딛어보시길 권한다. 먼 길을 오래 달리게 하는 힘은 비단 뛰어난 자세나 체력뿐만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동의보감’이 전하는 ‘군위육표(   爲肉標)’의 지혜를 마음에 새기며 새벽을 달린다.

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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