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을 하던 지인에게 “일 좀 가르쳐 달라”고 한참 조르던 때였다. 월급은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다. 안 주면 안 받아도 상관없었다. 누구보다 일 빨리 배워 제대로 된 일꾼 한몫 해낼 자신 있다며 동업자로 끼워만 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지인은 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두 가지를 물었다. “너, 진짜 다시는 배우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똥통에라도 들어갈 자신 있어?”
“물론이지.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1초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내 진심이었으니까. 당시 15년 차 배우로 일하며 남 보기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마트에 데려간 아이가 장난감을 보며 신나하면, 난 한 손으로 주머니 속 지폐를 세며 “오늘은 구경만 하는 날이야”라고 말했다. 아이 손에 들린 장난감 상자를 빼앗아 선반에 도로 올리면서 속으로 울었다.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도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내게 배우라는 꿈과 이상 따위는 하찮았다. 제대로 된 아빠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나는 그날로 휴대전화에서 연예계 관련 지인들의 연락처를 싹 다 지워버렸다. ‘에덴의 동쪽’ ‘선덕여왕’ 등 대작 드라마에서 한창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던 ‘배우’ 고윤후(45)는 이날 은퇴했다. 그리고 ‘노가다 아빠’로 새 삶을 시작했다.
월 200만원도 빠듯했던 배우의 삶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풍월주 호재 역으로 출연하던 당시 고윤후씨의 모습. 유튜브 캡처
배우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오디션 기회를 잡고 배역을 따내길 기다려야 했다. 배역을 따내면 현장에 나가 촬영 순서를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촬영을 마치면 몇 달 동안 정산을 기다린다.
간혹 좋은 기회가 이어질 때도 있었다. 송승헌 배우가 출연한 시대극 ‘에덴의 동쪽’에서 비중 있는 조연 ‘독사’ 역할로 주목받았고, 고현정 배우의 열연으로 유명한 ‘선덕여왕’에선 풍월주 호재 역할로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대기업 광고에 메인 모델로도 서면서 거리에서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갔다.
" 제가 가장 잘나갈 때 번 돈이 월 400만원 정도였으니까, 아주아주 평범한 직장인 정도의 수입이라고 보면 될까요? "
이런 기간도 길지 않았다. 늘상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직업은 배우지만 낮엔 연기학원 강사로 일하다 귀갓길엔 대리운전을 했다. 주말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멈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N잡러로 뛰는 데도 생활은 늘 군색했다.
그렇게 배우를 떠나 2021년 1월 1일, 첫 작업 현장에 도착했다.
고윤후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름을 '노가다 아빠'라 짓고, 아이들에게도 "아빠는 노가다를 하고 이 일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강정현 기자
" 정말 너무 추워서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돌은 무겁고 미끌미끌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 한 장 한 장이 다 돈인데 떨어뜨리면 큰일이거든요. "
첫날 현장 작업을 마치고 나니 그 추위에도 속옷이 푹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그렇게 돌밥 먹기 시작한 지 벌써 6년 차.
배우 일을 하며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해도 월 200만원 벌기가 빠듯했는데, 지금은 월평균 800만~1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가장이 됐다.
(계속)
“15년 배우 생활, 유독 그 두 사람은 못 잊겠다.”
연예계 연락처를 싹 지우고 공사판으로 간 고윤후. 그런데 지금도 선명한 두 배우가 있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그들은 결국 승승장구했다. 두 사람에게 얻은 깨달음으로 지금의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게 됐다.
아이 장난감 앞에서 주머니 속 지폐를 세던 아빠는 어떻게 월 1000만원 직업을 갖게 됐을까. 잊지 못할 두 배우의 정체와, 돌밥 6년 차에 터득한 ‘몸값 올리는 법’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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