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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잔열(殘熱)

Los Angeles

2026.10.2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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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만히, 지나온 자리를 되돌아봅니다  
 
그리 대단치 않은 얼룩들에  
 
마음을 베이고, 밤을 졸이며,  
 
어수선하게 흐트러뜨렸던 다짐들
 
 
 
차분해진 눈빛과  
 
입가에 살포시 얹어 둔 미소로  
 
무던히 소란스럽던 모서리들을 어루만지던  
 
그 찬란한 침묵을 기억합니다
 
 
 
겨를 없이 흘러간 계절들  
 
해 질 녘 뒤척이던  
 
침묵의 가장자리에 고인 잔열(殘熱)처럼  
 
문득 차오르는 아득함으로 그대를 생각합니다
 
 
 
침대에 걸쳐 앉아  
 
창틀 너머로 가늘게 휜 손톱달에
 
마음의 결을 따라 시선을 보냅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나면,  
 
눈꺼풀 안쪽에 새겨둔 붉은 얼룩을 머금고
 
가만히 눈길을 포개어 볼 수 있을까요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손톱달 아래 남겨 둔 그리움 하나
 
끝내 식지 못한 잔열(殘熱)처럼
 
당신의 이름 곁에서 천천히 밝아옵니다 

김혜석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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