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호가 23일 일본 나고야 팔로마 미즈호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제5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패러게임’ 남자 육상 400m T-13에 출전해 46.24로 세계신기록을 달성, 전광판 앞에서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예비 장인 어른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한국 장애인 육상의 샛별 장민호(29·안양시청)가 세계기록과 함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장민호는 2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미즈호공원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육상 남자 400m(스포츠등급 T13)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앞서 100m 금메달을 따낸 장민호는 대회 2관왕에 올랐다.
소름 돋는 질주였다. 5레인에서 출발한 장민호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150m를 지날 때 이미 다른 선수들과 격차가 벌어졌다. 장민호는 2024년 스칸데르 자밀 아트마니(알제리)가 세운 400m 세계신기록(46초44)을 0.2초 앞당겼다. 웨이드 판 니케르크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세운 비장애인 기록은 43초03이다.
23일 일본 나고야 미즈호 공원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육상 남자 400m T13 결선. 한국 장민호가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민호는 “오늘 세계신기록을 세웠는데, 원하는 목표는 사실 45초대를 뛰는 것이었다. 기록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2관왕을 했다는 것 자체도 너무 영광”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한국 장애인육상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온 건 무려 16년 만이다. 홍석만이 2010년 월드시리즈에서 800m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게 마지막이다. 장민호는 “너무 영광이지만 저는 장애인 선수도 하면서, 비장애인 선수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 정도 기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23일 ‘제5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패러게임’ 육상경기가 ‘팔로마 미즈호 스포츠파크에서 열렸다. 육상 800m T-13에 출전한 장민호가 46.24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교 졸업 후 육상을 그만뒀던 그는 여자친구의 격려로 다시 트랙에 돌아왔다. 그리고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눈이 불편해 안과를 찾았다가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시신경이 조금씩 기능을 잃어 30%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앓고 있어 언젠가 올거라 생각했지만,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 그에게 찾아왔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비장애인 AG에 출전해 400m 한국 기록을 세웠고, 장애인 대회에선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400m는 훈련 강도가 매우 높아 장민호에겐 힘든 종목이다. 안압이 올라가 눈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럼에도 그는 달리는 게 좋아 훈련을 거듭했다. 장민호는 “400m는 정말 애증의 종목이다. 제가 제일 잘하는 종목이기도 하면서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종목. 앞으로도 열심히는 하겠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 저는 훈련하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훈련시켜 주면 잘하겠지만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장민호는 예선에서 50초92를 기록했다. 결선을 위해 체력 안배를 하겠다는 작전이었고, 적중했다. “아직 400m를 한 지 얼마 안 돼 하루에 두 번 뛰면 기록이 잘 안 나온다. 한 번을 잘 뛰기 위해서 체력 안배를 했다”고 했다.
23일 일본 나고야 미즈호 공원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육상 남자 400m T13 결선. 한국 장민호가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민호는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을 목에 건 후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특수교사인 여자친구는 장민호가 육상 선수 꿈에 다시 도전하도록 돕고, 가장 옆에서 응원한 사람이다. 이날 경기장에는 여자친구와 예비 장인어른이 와 장민호의 세계신기록 질주를 지켜봤다. 장민호는 “여자친구가 아버님이랑 같이 보러 왔다. (여자친구가) 보러 온 경기에서 제가 최고 기록도 세우고, 세계신기록도 세웠기 때문에 예비 장인어른한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장민호는 한국 육상의 새 스타가 됐다. 국민적인 응원도 많이 받고 있다. 장민호는 “요즘 항상 응원해 주고, 연락도 너무 많이 주신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항상 열심히 해서 희망이 되는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며 앞으로도 달리기로 희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