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육로로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당일치기로 방문하며 북ㆍ중 밀착을 과시했다. 다음 달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이라는 ‘뒷배’를 부각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ㆍ미 대화에 손짓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발신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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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정상회담 때도 안 나온 “피로써 맺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김 총비서가 전날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주년을 맞아 중국 단둥을 방문하고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라고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만난 김 총비서와 왕후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주석의 모습.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신문은 25일 1~3면에 걸쳐 김정은의 단둥 방문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김정은은 지난 15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9일 만에 직접 자동차로 건넜다. 중국 도착 후엔 서열 4위인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등의 영접을 받았다. 조용원 당 비서, 최선희 외무상,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장 등이 수행했다.
김정은의 이번 방문은 북ㆍ중이 같이 기념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ㆍ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도움) 기념일(10월 25일)이 계기다. 김정은은 첫 일정으로 6ㆍ25전쟁 기념시설인 항미원조 기념관을 찾아 “우리 혁명을 피로써 도와준 역사를 대를 두고 잊지 않고, 조ㆍ중(북ㆍ중) 친선의 역사를 굳건히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중에서 김정은은 “피로써 맺어진 불패의 조중 친선”, “피로써 맺어진 조중 두 나라” 혈맹 관계를 5차례나 강조했다.
이는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때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표현이다. 방중 택일이나 메시지를 종합하면, 김정은은 ‘북ㆍ중은 한 몸’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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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반미 연대 부각하며 트럼프에 협상력 높이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주년을 맞아 중국 단둥을 방문하고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라고 보도했다. 일정을 마친 김 총비서가 최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귀국했다고 전했다. 왕후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주석 등 중국 측 인사들 또한 다리 중간 지점까지 함께해 김 총비서를 배웅했다. 노동신문=뉴스1
이처럼 이번 방중은 북ㆍ미 대화와 직접적인 관련 없이 반미 연대를 과시하는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미국과의 대화가 절실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
북한은 통상 5ㆍ10년 단위의 ‘정주년’을 중시해왔다. 올해는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 76주년인데도 김정은이 직접 단둥을 찾았다. 지난달 북ㆍ러 간 두만강 자동차 대교 개통식에 박태성 내각총리가 화상으로 참석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미국은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김정은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는 공개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김정은의 이번 행보가 대미 협상력 제고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특히 김정은은 공고한 국제 대북제재 체제라는 닫힌 문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정공법 대신 중국이라는 ‘뒷문’을 통해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을 수 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대북제재의 실효성이 약화하고, 향후 북ㆍ미 대화에서도 북한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주년을 맞아 중국 단둥을 방문하고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라고 보도했다. 일정을 마친 김 총비서가 최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귀국했다고 전했다. 왕후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주석 등 중국 측 인사들 또한 다리 중간 지점까지 함께해 김 총비서를 배웅했다. 노동신문=뉴스1
이번 김정은의 방중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 참석 이후 1년 1개월 만이며 집권 후 6번째다. 이 중에 시진핑을 안 만나고 귀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국가정보원은 중국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창 총리가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으나, 실제로는 서열 4위 왕후닝이 김정은을 맞았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번 방중 논의는 최소 2주 전부터 진행됐다. 중국이 김정은의 방문을 사전에 조율하면서도 영접 인사의 격은 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고려할 때 북한에 일방적인 대북제재 완화 조치를 취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리창까지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운 이벤트였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북한이 원하는 수준으로 경제협력을 확대할 경우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심화는 물론, 자국 기업과 기관들이 미국의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에 노출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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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압록강대교, 대북제재 돌파 '뒷문' 되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주년을 맞아 중국 단둥을 방문하고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라고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이후 단둥시 현지의 버스 공장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생산된 제품들을 직접 확인했다. 노동신문=뉴스1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깜짝 방중 배경에 경제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도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2014년 완공되고도 개통이 지연됐던 신압록강대교는 지난 6월 시진핑의 평양 방문 이후 개통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김정은이 직접 다리를 건넌 건 당시 양국 정상이 선언한 ‘조ㆍ중 새 시대’의 성과를 부각하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
북한으로선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김정은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과 원산갈마국제관광지구 등의 성과를 내기 위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하다. 김정은이 항미원조기념관에 이어 단둥의 버스 공장을 참관한 것도 국제 단체관광 확대에 대비한 교통 인프라 확충에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이벤트이자,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제재 완화와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김정은은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시진핑을 만나 전략을 조율한 전례가 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북ㆍ중 간 전략적 공조가 강화되고, 11월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북ㆍ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ㆍ미 대화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