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맹국들이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망인 스타링크를 대체할 독자 위성통신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위성통신망이 특정 기업이나 미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자국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통신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24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과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들은 독자 위성통신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스페이스X의 군사용 위성통신망 스타실드에 속도 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특정 민간기업에 군사·안보 통신을 의존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진 탓이다. 앞서 WSJ는 지난 20일 머스크가 직접 스타실드의 속도 제한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번 사태에 대해 “군사작전에 필수적인 통신망이 민간기업 한 곳의 결정으로 제약받는 상황이 현실화했다”고 짚었다.
2023년 8월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사전 공개 행사에서 스타링크 위성통신 안테나가 전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스타실드는 스페이스X가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기반으로 개발한 군사용 위성통신망이다. 스페이스X는 2022년 12월 스타실드를 공개했으며, 현재 미국과 우크라이나, 영국 등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샤헤드 자폭 드론을 요격하기 위한 방공 드론의 통신과 운용에 스타실드를 활용해 온 만큼, 이번 속도 제한 조치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24일 스타실드의 속도 제한 조치가 해제돼 통신망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타실드의 기반이 된 스타링크에 대한 의존도까지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스타링크는 스페이스X가 2019년부터 지구 저궤도에 위성을 발사해 구축한 위성 인터넷 서비스다. 기존 지상 통신망이 닿지 않는 오지나 해상, 전쟁 지역 등에서도 인터넷을 제공하며, 현재 전 세계 174개 국가·지역에서 약 136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전선 인근 도시 포크로우스크 부근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가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이미 독자적인 위성통신망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2일 핀란드 위성기업 아이스아이(ICEYE), 통신장비업체 노키아와 독자 위성통신망 개발을 위한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들 기업은 양국 정부가 위성과 지상 통신시설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개발해 2028년 첫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캐나다에서는 위성통신업체 텔레샛이 저궤도 위성 288기로 구성된 통신망 ‘라이트스피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2월 첫 위성을 발사해 2028년 초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 역시 약 175억 달러(약 25조원)를 투입, 프랑스 위성통신업체 유텔샛 등 3개 기업과 손을 잡고 위성 348기로 구성된 독자 통신망 ‘아이리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첫 위성 발사는 2029년으로 예정돼 있다.
한국도 독자 위성통신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정부는 2035년까지 한국형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정작 위성통신에 필요한 주파수 확보부터 쉽지 않아서다. 이미 위성망 주파수는 포화 상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위성망 주파수는 민간 기업이 하고 싶다고 독자적으로 신청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각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좀 더 속도감 있게 주파수 선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주에 있는 한 농장 상공에서 스타링크 위성들이 관측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스타링크에 대한 의존도를 단기간에 낮추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위성 보유 규모부터 차이가 크다. 스타링크가 운용하는 위성은 1만1000기를 넘어선 반면, 유럽에서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로 꼽히는 프랑스 유텔샛의 자회사 원웹이 운용하는 위성은 약 650기로 스타링크의 1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경쟁사들조차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릴 때 스페이스X의 발사체에 의존하는 처지라 ‘탈스타링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링크가 머스크 개인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도 동맹국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국 행정부가 수년 간 스타링크를 우크라 및 중동에서 외교·군사정책 수단으로 활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에서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과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스타링크 단말기의 통신을 차단하도록 스페이스X에 요청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가 당국의 인터넷 통제를 우회할 수 있도록 스타링크 통신망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엔 백악관이 우크라에 대한 스타실드 제한을 명령했다는 설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지난 21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행정부 누구도 통신망에 변경을 가하도록 요청한 적이 없다”며 백악관의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