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해 2분기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제조업 대국 독일과 일본의 흑자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도체발(發) 수출 호조 덕이다. 당분간 기록적인 흑자 행진을 이어갈 거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중국의 추격 속에 산업 다변화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부산항 감만,신감만 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2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국제통화기금(IMF) 주요국 경상수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2분기 경상 흑자는 1166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분기 수치가 확인되는 주요 36개국 가운데 중국(1937억2400만 달러) 다음으로 큰 규모다. 독일(522억8000만 달러)과 일본(506억2000만 달러)이 뒤를 이었다. 두 나라의 합계는 1028억9200만 달러로 한국보다 137억3700만 달러 적었다.
3개국 통계가 모두 확인 가능한 1996년 1분기 이후 한국의 경상 흑자가 독일·일본의 합계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독일과의 격차는 643억5400만 달러로 통계가 있는 1976년 이후 최대였다. 일본 역시 660억1500만 달러로 1996년 이후 격차가 가장 컸다. 한국의 2분기 흑자는 전년 동기(283억8600만 달러) 대비 4.1배로 불었는데 같은 기간 독일과 일본은 각각 11.9%·5.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록적인 경상 흑자 확대는 반도체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수출 호조가 이끌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반도체 수출은 1138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81.6% 늘었다. 3분기에는 1480억2000만 달러로 218.7%나 증가했다.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라 같은 물량을 팔아도 수출액이 커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9월까지 한국의 누적 전체 수출액(8145억 달러)의 41.8%에 달하는 3403억 달러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김경진 기자
흐름은 이어진다. IMF의 올해 한국 경상 흑자 전망치는 4219억4600만 달러다. 190개 국가·지역 중 중국(8632억500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증가 폭은 2988억9200만 달러로 중국(1388억300만 달러)을 제치고 세계 1위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흑자율도 18.8%로 IMF 통계가 있는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4.0%)·독일(4.5%)·일본(4.6%) 등 주요국을 압도한다. 일각에선 연간 흑자 규모가 5000억 달러에 육박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던 지난해(1231억 달러)의 4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역사적인 행보라 할 만하지만 취해 있을 상황은 아니다. 반도체 거품 붕괴 우려가 있는 데다 다른 산업과의 양극화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자동차와 배터리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의 공세, 관세 장벽 대응으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조선·방산 등도 중국의 공세와 미국·유럽의 견제 사이에 끼여 수주 둔화 우려가 나온다. 석유화학은 글로벌 공급 과잉 국면이 길어지면서 혹독한 시기를 버티고 있다.
IMF도 내년까지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40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9년엔 2956억5600만 달러, 2031년에는 1774억9100만 달러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과도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흑자는 반도체의 물량보다도 가격 덕분”이라며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각국의 반도체 자체 조달 움직임 속에 점유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흑자로 생긴 여력을 경제 체질 개선에 써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양 교수는 “반도체 호황의 기반인 인공지능(AI) 붐이 예상치 못하게 빨리 끝나면 충격이 클 것”이라며 “돈이 많이 들어오는 올해와 내년이 미뤄온 한계기업 정리 등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