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치매와 파킨슨병 등으로 장기간 투병 중인 60대 여성의 계좌에서 남편이 숨진 뒤 요양보호사에게 1억원 넘는 돈이 됐는데도 지난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가 검찰(공소청) 요구에 따라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치매 환자가 요양보호사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을 묘사해 제작한 AI 이미지. 사진 제미나이
2018년 무렵부터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온 A씨(63)의 가족은 2024년 10월 A씨 계좌에서 요양보호사 B씨의 계좌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B씨와 교대로 A씨를 돌봤던 다른 요양보호사가 가족들에게 “계좌에서 돈이 계속 사라지는 것이 수상하다”고 알려줘서였다. 뇌병변 중증 장애인인 A씨는 2015년 뇌출혈로 세 차례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어려워졌고, 인지능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B씨는 2020년 11월부터 방문요양센터 소속으로 A씨 집에서 일했고, 2022년 11월 A씨의 남편이 숨진 뒤로는 센터를 거치지 않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A씨를 돌봤다. 아들이 미국에 거주하는 탓에 A씨는 일상생활 상당 부분을 B씨에게 의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이 추적해보니 2년 동안 200차례 가까운 거래를 통해 1억6000만원이 넘는 돈이 B씨에게 넘어가 있었다. A씨 계좌에서 B씨 계좌로 돈이 처음 이체된 것은 A씨 남편이 숨진 지 사흘 뒤인 2022년 11월 9일이었다. 한창 장례식이 치러지는 가운데 100만원이 A씨 계좌에서 B씨 계좌로 송금됐다. 이를 시작으로 2024년 10월까지 모두 196차례에 걸쳐 1억1612만3000원이 B씨 계좌로 이체됐다. 2023년 8월에는 A씨의 정기예금 1억원이 해지된 뒤 현금 3000만원과 1000만원권 수표 2장이 B씨에게 건네졌다. 2024년 9월에는 A씨 소유 승용차가 130만원에 팔렸고, 가족 측은 이 대금도 B씨가 가져갔다고 주장한다.
가족들은 곧바로 경찰에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는 지난해 6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경찰은 A씨의 돈 1억6600여만원이 B씨에게 넘어간 사실은 확인했다. 그러나 A씨가 인지능력 저하로 피해 진술을 하지 못한 점, A씨가 평소 B씨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의 치매 진단서. 사진 A씨 가족
A씨 가족 측은 이 같은 수사 결과에 반발했다. 정서적 의존과 인지능력 저하가 겹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재산을 빼내기 쉬웠다는 것이다. A씨 가족 측 법률대리인은 “B씨가 적극적으로 A씨를 기망해 돈을 빼내지 않았더라도, 심신상태를 본다면 준사기 혐의는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현재 A씨는 자신이 B씨에게 거액을 줬다는 사실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형법상 준사기죄는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으면 성립하고, 속이는 행위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
A씨 가족 측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아쉬움도 토로했다. 경찰이 A씨가 제대로 진술할 수 없는데도 함께 일한 다른 요양보호사 등 주변인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B씨 진술에 기대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거동이 불편한 A씨 대신 장보기와 살림을 도맡았고, 내가 전세 사는 형편을 알고 도와주려고 준 돈”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 가족 측은 “B씨가 정서적으로 의존하던 A씨의 떨어진 판단능력을 이용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가져갔다”며 지난해 9월 경찰에 이의신청을 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현 공소청)은 1년 가까이 지난 올해 8월 말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A씨를 돌본 적이 있는 친동생은 불러 조사했지만, 다른 참고인 조사는 진행하지 못했다”며 “준사기 혐의 적용도 검토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완수사 요구에 따라 당시 부르지 못한 참고인들을 조사하고, A씨의 의료기록도 확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B씨는 중앙일보에 “이유 없이 받은 돈이 아니다. 일을 한 만큼 받은 것”이라며 “A씨가 본인 의지로 준 돈이고, 경찰 조사에서도 다 진술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