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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에서 좌파 거물로…브라질 첫 4선 대통령 된 룰라

중앙일보

2026.10.25 18:37 2026.10.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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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대통령이 대선 결선투표일인 25일(현지시간)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룰라 대통령이 대선 결선투표일인 25일(현지시간)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은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현 대통령(81)이 미국을 겨냥해서 한 연설의 핵심이다. 브라질 유권자는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25일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룰라의 손을 들어줬다. 룰라의 승리기도 하지만 반(反)트럼프, 좌파 진영의 뜻이기도 하다.

룰라는 남미를 상징하는 좌파 정치인이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구두닦이와 세탁소 보조 일을 했고, 10대에 공장 노동자가 됐다. 기계공 훈련을 받은 뒤 금속 노동자로 일한 경험은 훗날 그를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왼손 새끼손가락 일부를 공장 기계 사고로 잃었다. 역시 소년공 시절을 겪은 이재명 대통령이 교감하는 인생 역정이기도 하다.

룰라는 1970년대 군사독재 아래 금속노조 지도자로 성장했다. 1979년 대규모 파업을 이끌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듬해 노동자·지식인·예술가들과 노동자당(PT)을 창당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빈곤 퇴치를 앞세워 브라질 좌파의 중심축이 됐다. 하지만 대권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 도전한 끝에 2002년 대권을 거머쥐었다.

1979년 노동운동가 시절 룰라(왼쪽)가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광장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folha

1979년 노동운동가 시절 룰라(왼쪽)가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광장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folha

2003년 취임한 룰라 대통령의 임기는 브라질의 전성기와 맞물렸다. 원자재 호황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했고, 빈곤층을 겨냥한 사회복지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이 국민의 생활 개선에 기여했다. 신흥국 협의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재선은 당연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부패 수사와 함께 무너졌다.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 등을 둘러싼 대형 부패 수사 ‘라바 자투(Lava Jato·세차)’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룰라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2018년 수감됐다. 그는 표적 수사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580일간 수감은 대선 출마까지 막았다. 그해 우파 포퓰리스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전은 2021년 찾아왔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룰라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 관할권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유죄 판결을 무효로 했다. 복귀한 룰라는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50.9%대 49.1%로 가까스로 꺾었다. 그리고 올해 대선에서 보우소나루의 아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도 누르고 통산 4선에 성공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룰라는 선거 내내 보우소나루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싸워야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산 일부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했고, 이후로도 무역 압박을 이어갔다. 룰라는 “주권 침해이자 선거 개입 시도”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페루·콜롬비아·볼리비아·코스타리카·칠레 등에서 우파 지도자가 잇따라 승리한 것도 경계심을 높였다. AP통신은 “중남미에서 트럼프와 가까운 우파 정치세력이 확산하는 흐름(블루 타이드)에 룰라가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김기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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