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출 규제가 서울 집값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은행 ATM기. [연합뉴스]
정부가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며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서울 아파트값 안정에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할수록 서울과 지방의 주택 가치 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상만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근 서강대 부동산학과 연구팀과 강호준 동덕여대 경영융합학부 공동 연구팀은 “부동산연구저널(Journal of Real Estate Research)이 지난 16일 ‘거시건전성 주택담보대출 정책과 지역별 주택 가치 격차’ 논문의 게재를 승인(accept)했다”고 27일 밝혔다. 2002년 9월부터 2026년 4월까지 55건의 정부 부동산 정책을 강도별로 점수화해, 대출 규제가 우리나라 주택 시장에 미친 여파를 분석한 논문이다. 주택 시장 범위는 서울·수도권·서울제외수도권·부산·비수도권·전국 등 6개로 구분해 주택 가치 변화를 살폈다.
‘정책의 역설’ 증명한 서강대·동덕여대 연구팀
정부 대출 규제 정책이 지역별 집값에 미친 효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분석 결과,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부산시(-13.1%)와 비수도권(-17.3%)의 집값이 도드라지게 폭락했다. 구체적으로 대출 규제가 강화된 시기는 ▶2017년 8월 ~ 2022년 상반기와 ▶2025년~2026년 상반기다. 첫 번째 시기는 문재인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일괄 하향 조정하고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상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전면 금지한 시기다. 두 번째 시기는 이재명 정부가 주담대 한도를 축소하고 실거주 전입 의무를 강화한 시기를 포함한다.
흥미로운 건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 효과가 서울에서만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분류한 전국 6개 지역 중 규제 강화와 집값 간의 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지역은 서울이 유일하다. 대출 규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서울 집값(가치)을 떨어뜨리는 효과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오히려 대출 규제는 비(非)서울 거주자의 서울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효과를 유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정부가 대출 규제 강화책을 발표한 지 12개월 이후 서울 아파트 매수자 중 외지인(비서울 거주자) 비중은 1.55%포인트 증가했다. 정부가 대출을 옥죄면 이른바 ‘똘똘한 한 채’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에 부동산 투자가 집중한다는 속설이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서울 중간 가격대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처음으로 11억 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서울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뉴스1]
이에 대해 연구진은 서울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재건축·재개발 등 기대감으로 대출에 의존하지 않는 매수층이 상대적으로 두터워 발생하는 현상으로 추정했다.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총동원해 집을 구매한 청년층)’이 정부 대출 규제로 튕겨 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자산가가 이 물량을 받아낸다. 결과적으로 실수요자에서 현금을 보유한 자산가와 외지인 투자자로 교체될 뿐 서울 집값은 하락하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현상을 연구진은 ‘매수자 풀의 선택 효과(buyer-pool selection effect)’라고 설명했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대출 의존도가 높은 매수자는 부동산 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한 매수자는 계속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매수자 구성 변화가 서울과 비수도권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강호준 교수는 “대출 규제가 서울 집값을 누르기보다, 서울 집을 사는 대상을 바꾼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출 규제, 영끌족 대신 외지인 서울 입성
서강대·동덕여대 연구진이 발표한 ‘거시건전성 주택담보대출 정책과 지역별 주택 가치 격차’ 논문. [사진 서강대·동덕여대]
이처럼 정부가 대출을 규제하는 동안 서울 집값은 하락하지 않았지만, 비수도권 주택 가치는 급락하면서, 서울과 비수도권 간의 상대적 주택 가치 격차는 더욱 확대했다. 서울 집값을 잡으려고 도입한 대출 규제가 결과적으로 지방 집값만 발목을 잡으면서 부동산 양극화와 자산 격차를 부채질한 ‘정책의 역설’이다. 정책의 역설은 선한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의도와는 다르게 부정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다만 서울에서 모든 시점의 정책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연구에 따르면, 주택 대출 규제를 강화한 일부 시점에선 국소적으로 서울 집값도 일부 하락한다. 이번 연구 주저자인 변호균 플랜M 이사(서강대 박사)는 “서울 집값은 대출 규제라는 금융 정책 변수에 의해 통제되거나 안정적인 장기 균형으로 수렴하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것”이라며 “다만 모든 시점에서 대출 규제가 서울 아파트 매매가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규제 효과가 작고 불안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