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시뮬레이션 게임 ‘스푸키친’을 개발 중인 국내 게임사 와이낫은 지난 20일 외부 공개 중이던 체험판(데모)을 닫아버렸다. 이 회사 개발자인 시니밍·서리밍(활동명)은 최근 한 달 사이 인공지능(AI)으로 게임을 베끼겠단 이메일을 두차례 받았다. 이메일엔 “게임 메커니즘(방식)을 차용해 AI로 만들려 한다”,“따라 만드는 거 막을 수 없는데 시간 낭비 말고 출시일과 가격을 알려달라”는 내용이 협박조로 담겼다. 비(非) 개발자도 게임 콘텐트의 핵심 재미요소인 메커니즘만 알면 코딩 AI로 유사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생긴 일이다. 회사 측은 “먼저 출시됐단 이유로 AI로 만든 유사 게임이 원작처럼 받아들여지고, 오히려 원작이 표절작으로 오해받을 가능성도 걱정된다”며 데모 종료 이유를 설명했다.
코딩 AI에 말로 명령해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이른바 ‘딸깍 게임’ 시대가 열리자, 시간과 공을 들여 상업용 게임을 만들어온 창작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원본 코드를 확보하지 못해도 데모나 트레일러에 드러난 외형과 플레이 방식을 참고해 AI로 유사한 게임을 만드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개발 방식이 확산하면서, 게임 생태계 비즈니스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데모 종료를 알리는 인디 게임 스푸키친 개발진. 사진 X
기존에도 로블록스·포트나이트처럼 게임 내에서 이용자들이 직접 게임 콘텐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UGC 플랫폼에 상업용 게임을 따라한 이른바 ‘클론게임’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픈 AI의 아스트라 같이 손쉽게 게임 코딩을 해주는 프론티어 모델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플랫폼 경계를 넘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모방 우려에 공개 시연을 취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본 인디 게임사 얼라이언스 아츠는 지난 16일 신작 ‘드렁큰 가디스 리플럭스’의 공개 데모 배포를 취소하고 제한된 인원만 참여하는 비공개 시연으로 바꿨다. 개발사 측은 데모의 외형과 플레이 방식을 모방한 게임이 원작보다 먼저 출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아이언 필그림’ 개발사인 위즐핏은 지난달, 24시간 안에 200달러 상당의 스팀 콘텐트를 보내지 않으면 복제작을 먼저 판매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개발자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지난 20일 AI를 이용한 모방 우려로 체험판을 비공개 전환한 인디 게임 '스푸키친'. 사진 와이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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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비용은 원작자가, 흥행은 모방자가
업계에선 수년간 공들여 만든 게임이 AI 활용 모방 게임 때문에 피해보는 일이 반복될 경우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작자는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게임을 다듬는 데 시간을 쏟지만, 모방자는 관심을 끈 결과물을 골라 따라 만들 수 있다. 한 5년차 인디 게임 개발자는 흥행 게임을 AI로 재현하는 행위를 ‘신종 쌀먹(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재화를 현금으로 바꾸는 행위)’에 빗댔다. 이 개발자는 “극단적으로 말해 괜찮아 보이는 게임 데모나 막 출시해 인기를 끄는 게임을 AI로 외형만 살짝 바꿔 반복해서 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본인이 개발은 하지 않고 이렇게 반복 작업만 해도 꾸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게임 시장이 자본력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요즘 게임·앱 개발자들은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감춰두고 싶어할 정도”라며 “갈수록 AI가 쉽게 베낄 수 없는 큰 게임만 살아남는 자본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마련하고, 인디·중소 게임사를 위한 저작권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