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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된 홍상수 보인다…김민희와 3관왕 ‘눈 둘 데가 없네’

중앙일보

2026.10.26 17:41 2026.10.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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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가 21일 개봉했다. 지난 8월 제79회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돼 감독상과 최우수 연기상(김민희),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가 21일 개봉했다. 지난 8월 제79회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돼 감독상과 최우수 연기상(김민희),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캠코더로 찍은 화질은 무디고, 말소리는 제주 바람소리에 뭉개진다. 인공조명 없이 자연광과 형광등 불빛 아래, 피가 섞인 가족과 섞이지 않은 가족들의 어색한 눈치도 날것 그대로 담겼다. 재혼해 제주에 사는 엄마(최명길)를 10년만에 찾아간 딸 상희(김민희)의 2박 3일을 영상 일기처럼 새겼다.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가 21일 개봉했다. 배우 김민희가 득남 후 처음 스크린에복귀했다. 홍상수 영화론 이례적으로 ‘가족영화’란 수식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독립적 제작 방식을 줄이고 더 줄여, 영화 ‘인트로덕션’(2021)부터 제작·연출·각본·촬영·편집·음악 등을 도맡아온 홍 감독이 또 다시 초경량 카메라를 연필 쥐듯 잡았다. 간소해진 제작 여건만큼 화질과 음질은 거칠어졌다. 상희로부터 ‘엄마의 남편의 딸’까지 아우른 복잡한 가족관계, 꼬이고 꼬인 삶을 예술이 순연히 꿰뚫는 순간 등을 72분의 짧은 상영시간에 포착해냈다. 소주 냄새가 진동하는 찰나의 연애 감정, 초탈한 예술가의 방랑을 예찬해온 홍상수의 시선이 부모자식 사이에 밀착했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에서 새아버지와 아침 산책에 나선 엄마는 전남편과 낳은 딸 상희와 둘째 상원과 마주친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에서 새아버지와 아침 산책에 나선 엄마는 전남편과 낳은 딸 상희와 둘째 상원과 마주친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지난 8월 제79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홍상수·김민희 커플이 감독·배우상, 에큐메니컬 심사위원대상 등 3관왕을 휩쓸며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해외 영화제에서 자주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에 비견되곤 하는 홍상수 영화가 이번엔 보다 따뜻해진 시선과 섬세한 유머, 인간 소외를 탐구한 깊이로 해외 평단을 사로잡았다.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의 간극을 곱씹게 하는 영화다. 예컨대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은 화면에 코빼기도 안 비친다. 상희의 엄마가 제주도에서 대박을 친 밥집, 어릴 적 엄마 ‘껌딱지’였던 상희를 엄마에게서 떼놓은 친부의 외도 등은 대사로 스칠 뿐이다. 카메라가 끈질기게 보여주는 건 “엄마, 정말로 반가워요”란 모녀답지 않은 첫인사와 함께 어색하게 흐르는 적막 같은 것이다. 상희의 가슴에서 조금씩 스며나오는 서운함과 질투, 애틋함이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감독 지망생 역을 맡은 김민희가 풍부한 표현력을 담은 절제된 연기로 감독 파트너(홍상수)의 간결한 시나리오의 빈틈을 모두 채워준다”고 호평했다.

엄마 딴에도 상희는 어려운 딸이다. 비싼 미술 유학을 보내놨더니 돈 안 되는 실험영화에 빠진, 순수하고 고지식한 맏딸이 맘 같지 않으면서도 자꾸 눈에 밟힌다. 자신을 닮아 셈이 빠른 둘째 아들(신석호)과 달리, 상희는 엄마에게 늘 매혹됐지만 결국 깨지고 말았던 옛 사랑을 닮은 얼굴일지 모른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는 상희가 동생 상원과 제주도의 엄마를 찾아간 2박 3일 여정을 일기 쓰듯 보여준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는 상희가 동생 상원과 제주도의 엄마를 찾아간 2박 3일 여정을 일기 쓰듯 보여준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엔딩을 장식하는 상희의 단편 영화엔 그가 담담하게 담아낸 길가의 민들레와 그의 이런 고백이 어우러진다. “나는 순하다. 나는 조용하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어.” 이런 응시의 태도는 상희가 좀처럼 가까워질 것 같지 않아 ‘그 사람’이라 불렀던 새아버지(다큐멘터리 감독)와 뜻밖에 통하는 계기가 된다.

전체 영화의 축소판처럼 내레이션과 묘사 방식까지 닮은 이 영화 속 영화는 ‘눈 둘 데가 없네’ 자체가 상희가 찍은 또 다른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던진다. 영화에서 상희의 단편 영화를 유일하게 두 번 유심히 살펴보는 엄마의 시선을 강조한 장면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영화 처음부터 일기 읽듯 들려오는 상희의 속마음을 실은 엄마가 모두 들여다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딸 상희의 1인칭 시점 영화지만, 화면에 담기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슬랜트매거진은 “가족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홍상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낙관적 영화로서” 주목했다. 배우 권해효는 지난 10일 이 영화로 찾은 부산영화제에서 이번 영화로 13편째 함께한 홍상수 감독에 대해 “어떤 여성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남자에서 누군가의 아버지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에서 가족들이 상희가 산책 나간 사이 상희의 유튜브에 있는 단편 영화들을 보고 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에서 가족들이 상희가 산책 나간 사이 상희의 유튜브에 있는 단편 영화들을 보고 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좋아하는 것은 미리 알 수 없다”는 상희의 예술적 관점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며 찰나의 매혹을 긍정해온 홍상수 감독의 작품관과도 상통한다. 로카르노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삶은 흥미롭고 (닳고 닳은) 스토리는 지루하다. 내 앞에 뭔가 실제로 일어나는 작은 일이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영화를 만들게 한다”고 연출관을 밝혔다.

‘눈 둘 데가 없네’는 로카르노영화제를 시작으로 뉴욕영화제, 함부르크영화제, 밴쿠버영화제, 부산영화제에 더해 ‘암살자(들)’이 개막작에 선정된 싱가포르영화제에도 초청됐다.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선 주목할 만한 소품이란 게 중론이다. 영국 스크린데일리는 “홍상수 영화 치고도 연출이 매우 간결하다”며 “홍상수 팬 이외의 관객을 사로잡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8월 제79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 '눈 둘 데가 없네'로 초청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현지 기자회견 및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사진 로카르노영화제 공식 유튜브 캡처

지난 8월 제79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 '눈 둘 데가 없네'로 초청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현지 기자회견 및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사진 로카르노영화제 공식 유튜브 캡처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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