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방문 중에 종묘, 창경궁, 창덕궁을 방문하였다. 마침 수요일은 무료 개방이라 우연치 않게 무료로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젊었을 때 간 이후로 오랜만이어서 감회가 새로웠고 이곳의 가이드를 해 주신 한국에 사시는 지인이 해박한 지식을 쏟아내며 설명을 해 주셔서 더욱 재밌는 관람을 하였다. 예전에는 못 느꼈던 한국 건축미의 재발견을 했다. 프랑스의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단아하고 자연을 감싸는 한국 건축미에 매료되었다.
가이드 하던 지인이 말씀 중에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서 김부식은 백제의 궁궐을 두고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평했다 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 여덟 글자는 한국 전통 건축과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문장이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미니멀리즘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자연스러움)’의 고전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한옥이나 백제의 건축을 떠올려 보면, 인위적으로 자연을 꺾거나 거창하게 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능선과 결을 그대로 살리며 서 있는 나지막한 기와지붕처럼,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품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종교계와 영성 트렌드를 돌아보면, 과연 우리의 신앙도 이러한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멋을 지니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의 수많은 현대인들은 거창한 구호나 과도한 세속적 화려함, 혹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신앙에 피로감을 느낀다. 지나치게 외형적 성장에 몰두하거나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은 종종 사치(侈)로 흐르기 쉽고, 반대로 내면의 본질을 놓친 채 형식만 남은 단조로움은 누추함(陋)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한국 전통 건축이 가진 미니멀리즘과 자연스러움 속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영성이다. 신앙의 불필요한 군더더기와 과시욕을 비워내는 영적 미니멀리즘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요란한 기도나 거창한 봉사 대신, 내면의 깊은 정직함과 겸손함으로 삶을 채우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검소하고 소박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깊이와 온유함은 결코 누추하지 않고 강인한 울림을 준다.
둘째, ‘화이불치(華而不侈)’의 삶이다. 신앙인이 세상 속에서 발휘해야 할 아름다움은 사치스러운 화려함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의 고유한 품격과 사랑의 열매이다. 억지로 꾸며낸 거룩함(꾸안꾸의 ‘꾸’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묵묵히 동행하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선한 영향력이다. 이는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주변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정원의 조용한 꽃향기와 같다. ‘꾸안꾸’(한국 젊은 사람들의 신조어로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약자)가 진정한 멋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이 탄탄해야 하듯, 자연스럽고 미니멀한 신앙 역시 깊은 내면의 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