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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이야기] 내게 부치는 가을편지

Los Angeles

2026.10.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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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언론인

김용현 언론인

김용현씨, 별일 없으시지요? 무슨 말로 인사를 할까 하다가 언젠가 들으니 ‘별일 없으시지요?’ 하는 인사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게 서두를 잡아봤습니다.  
 
만추의 계절입니다. 별일 없으시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일기를 적어왔고 미국생활 45년 동안 시사평론이며, 칼럼이며 어지간히도 글을 많이 써 왔지만 생전 처음으로 내게 부치는 편지를 써 본다니,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별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계절이니 용서를 바랍니다. 책상머리에 사랑하는 후배 정찬열 시인이 LA를 떠날 때 써준 ‘가을 편지’라는 시가 걸려 있고 해마다 이맘때면 고은 선생이 쓰시고 한국인 최초의 샹송가수 최양숙이 부른 ‘가을 편지’가 흥얼거려지기도 해서입니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그래서 나도 미친 척하고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나한테 편지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김용현씨, 뉴저지 3년이 즐거우셨나요? 전업 농부는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텃밭 농사에 재미 붙이며 딸네 식구와 가까이 사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거기다 원하던 산골 마을로 이사까지 했으니…. 지난주에는 산골 사람이 도시로 나가 대형 뮤지컬 ‘여호수아’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요. 그리고 그다음 날엔 뉴저지에서 가장 깊은 계곡, 델라웨어 워터 갭에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좋았지요? 10월의 뉴저지 풍광은 어디랄 것 없이 온통 가을빛으로 물든 고운 화폭 같다고나 할까, 동네 주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난달 생일을 보낸 소회가 다른 해보다 조금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랬나요? 산수(傘壽)를 막 지난 뒤까지만 해도 나이 먹는 것에 둔감하다고 말하더니 올해 뭐가 달라졌나요? 같은 나이 친구 중에는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째깍째깍 시계추 소리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는데 김용현씨도 그렇던가요?  아내가 곁에 있고 아이들이 가까이 있는데도 문득 외로워지고 쓸쓸해진다는 친구도 더러 있던데  김용현 씨도 그렇게 느끼나요?
 
그래요. 인간은 본시 외롭기 마련이지만 안 그런척하며 사는 거지요. 한국을 떠나 올 때 ‘열애’ 라는 노래로 유명했던 가수 윤시내가 요즘 부른 ‘인생이란’ 곡도 자주 듣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알 수가 없네 /살아갈수록 눈물이/ 살아갈수록 외로움이/ 웃어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웃어도 가슴이 아픈 까닭은 남은 날의 계수(計數)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날에 대한 뉘우침 때문은 아닌가요?
 
맞아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가족을 미국에 데려와 고생시킨 것도 미안한데 평화운동 한다고, 폭력과 전쟁 없는 세상 만들어 본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무슨 신기루를 좇는 것 같았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서러워 마십시오. 평화가 그렇게 쉽게 온다고 누구도 장담 못 하는 것을…. 이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닌 것도 알지 않습니까?
 
다행한 것은 노벨상 심사위원회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남아프리카의 나비 필라이 에게 수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힘 있는 자들 간의 종전 합의에서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에게는 완전한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필라이 씨의 주장이 공감을 얻은 겁니다.
 
그런데 누가 또 가을을 이별의 계절이라고 했습니까? 낙엽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라고요? 아니요, 낙엽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뿐입니다. 가을은 만남의 계절입니다. 숲속의 전원 마을에 들어와 살가운 벗들을 만난 것이 그렇고, 방송국 DJ를 하면서 첫아이 이름을 지어준 인연이 컸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던 극작가이며 전도사인 오혜령씨와 무려 53년 만에 소통이 된 것도 이 가을에 일어난 일입니다
 
김용현씨, 한동안 엉뚱한 동명이인 때문에 속상했다고요. 동국대학교 김용현 교수야 진즉부터 아는 사이지만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용현은 12·3 내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기까지 신문에 매일 그 이름이 오르내렸으니, 설마 이 편지가 서울 동부 구치소로 가는 건 아니겠지요?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걸을 수 있을 때 피붙이나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야 하는데…. 어느덧 가수 이용이 1년 중 제일 바빠지는 날도 며칠 안 남았네요.

김용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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