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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가을이 지나간 풍경

Chicago

2026.10.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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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청춘은 내일의 꿈을 안고 눈부시게 반짝였어요. 목마른 나무들은 청록의 잎들은 껴안고 대지는 불타는 정열로 타올랐습니다. 꽃들은 입술이 터질듯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계절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 꽃말을 새겼어요. 떠나도 사랑은 남는 거라고, 마른 꽃잎 접어 당신께 드릴 꽃잎 송별에 적어 보낼게요. 작별을 더 이상 슬퍼하지 마세요.  
 
현재(現在)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습니다. 과거는 흘러갔고 현재의 시간은 순식간에 과거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도 어쩌면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는지요?
 
노을이 부드럽게 대지를 껴안고 떠나갈 준비를 합니다. 여린 잎새는 작은 바람에도 나부낍니다. 쌀알보다 작은 무당벌레는 갈 곳을 잃고 창틀에 매달렸어요. 줄지어 서있는 단풍나무는 햇살이 먼저 비추는 쪽으로 빨갛게 타올랐어요. 사랑도 참고 견디면 한 쪽이 흔들려도 무너지지는 않겠지요. 코스모스는 뒷마당에서 수줍게 가는 목을 흔듭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허허로움을 슬퍼하지 마세요. 내일을 참고 견디면 인생의 계절은 돌아옵니다. 빛 바랜 일기장의 낙서를 뒤적이면 꿈 속의 파랑새는 다시 날아옵니다.  
 
까마귀가 지붕 위에서 청승맞게 우는 날은 우체통에 달려가 엽서를 기다렸어요. 빈손으로 메일 박스를 닫아도 눈물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당신도 부대끼며 허공에 매달린 풍선을 잡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고국을 떠 난지 25년, 지희(지은이)는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러 한국 땅을 다시 밟는다. 지희는 아버지의 묘를 휘감고 있는 찔레꽃 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본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흙 한 줌을 손에 담으면서 긴 이별을 고한다.’ 어느 분이 2002년 출간된 ‘찔레꽃 2’ 책소개를 했어요.  
 
24년 전에 쓴 책인데 여태 인터넷에 떠돌다니, 참고 견디면 살고 싶은 날도 생깁니다.  
 
집필 중인 장편소설 ‘바람벽’은 느린 속도로 오락가락 합니다. 시작이 흔들리고, 용기가 절망이 되고, 절망이 뿌리 내릴 때까지 인고의 날들은 가혹하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구의 낯선 길목에서 투쟁하는 이방인들의 눈물과 생존을 누군가 기록해야 합니다. 카뮈의 ‘이방인’은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릅니다.  
 
인생은 할 수 없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고민합니다. 정작 하고 싶은 것은 포기하고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합니다. 사랑과 운명, 가까운 것과 멀리 있는 것들에게 참을 수 없는 신호를 보냅니다. 거짓으로 사랑의 파편을 가슴에 새길 수 없습니다. 흔적은 오래 남습니다. 이 가을에 당신의 마음에 새길 문구는 무엇인가요?  
 
보자기에 잘 담지 않으면 마음은 흩어집니다. 사랑도 굳게 붙들어야 날아가지 않습니다. 단풍은 찬란한 띠를 온몸에 두르고 곧 이어 다가올 작별의 시간을 재촉합니다. 마른 잎 한 송이가 ‘마지막 잎새’로 창밖에 매달려 있습니다. 희망은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대가 보낸 마른 잎새가 생명의 등불이 됩니다.
 
가문비나무는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구어 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납니다. 언젠가 바이올린이 되어 아름답게 울릴 질 좋은 목재가 됩니다. 사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안 돼도 흔들리지 마세요. 마음의 지도는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할지 망설이지 마세요. 지워진 사랑은 떠나갔지만 계절은 다시 돌아옵니다.
 
마른 잎새처럼 구멍 난 가슴을 쓰다듬어 주세요. 마음도 다잡지 않으면 옆으로 샙니다. 가을이 지나간 풍경 속에 채색할 생의 찬란한 명작을 하늘 저 멀리 그려 주세요.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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