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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세월을 건너온 온기

Los Angeles

2026.10.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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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아 수필가

엄영아 수필가

우리 삶에는 이성적인 논리나 과학적인 확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했다. 최근 축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오넬 메시와 스페인의 축구 신성 라민 야말의 오래된 사진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2007년의 이야기다. 스무 살의 젊은 메시가 자선 달력 촬영을 위해 어느 가족과 만났다. 생후 5~6개월 남짓의 아기와 함께였다. 작은 플라스틱 욕조 안에 아기를 앉히고, 메시와 아기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을 적셔 씻기고 있었다. 어린 청년이 낯선 아기를 안아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 아기가 훗날 라민 야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축구계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는 작은 욕조에 담긴 물을 보며 ‘축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물은 몸을 씻어 주지만, 때로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물은 정결과 거듭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진 속 물이 단순한 목욕물로만 보이지 않았다. 한 시대의 별이 될 청년이, 작은 생명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로 느껴졌다.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 손길에 담긴 순수함이다.
 
메시는 자신이 씻겨준 아기가 훗날 세계적인 선수로 자라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야말 역시 자신이 누구의 손에 안겨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일을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만약 야말이 축구선수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갔더라도 그날 메시가 건넨 친절은 축복이었을 것이다. 축복은 반드시 먼 훗날 거창한 열매를 맺어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건넨 따뜻한 손길, 그 순간의 다정함 자체가 이미 축복이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보고 지난 순간의 의미를 판단하지만, 사랑은 결과를 계산하며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걸어온 길 위에도 기억 속의 인연들과 이름조차 잊힌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와 섬김의 손길이 내 삶의 한 부분을 단단하게 지켜주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까. 축복은 손안에 움켜쥐고 있을 때보다 타인에게 흘려보낼 때 비로소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세월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순간을 다시 불러내어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를 비춰준다. 오늘 내가 건네는 작은 온기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삶에 오래도록 남아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건넨 위로 한마디가 그 사람의 하루를 살리고, 작은 손길 하나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받은 사랑을 다시 건네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사랑과 축복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흘러가기를 기도한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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