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1주일 앞두고 공화당의 전통적 텃밭인 텍사스주를 찾아 베네수엘라 원유를 실은 유조선까지 내세워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란전쟁으로 치솟은 기름값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발목을 잡자 군사작전을 통해 확보한 베네수엘라 원유를 부각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전의 경제적 부담은 시인하면서도 “미국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러벅 메모리얼 시빅센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춤을 추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27일(현지시간) 텍사스 코퍼스크리스티 항구에서 유세에 나섰다. 그가 이곳을 장소로 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연설 초반 항구에 정박한 유조선을 가리키며 “저기 저 작은 배가 보이느냐”며 “베네수엘라에서 온 원유 100만 배럴”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유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며 “승자에게 전리품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고물가로 인한 표심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한 미국의 군사작전을 원유 확보라는 경제적 성과와 연결한 것이다. 트럼프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많은 원유를 가져오고 있다”며 해당 원유가 텍사스에서 정제되면 소비자들이 내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곧 급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원유가 “미국 납세자에게 아무런 비용 없이” 제공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는 해당 물량이 무상 선물이 아니라 할인 가격으로 구매하는 거래라고 전했다. 원유 생산업체인 노스아메리칸블루에너지파트너스(NABEP)도 미국 정부가 자사 생산량의 20%를 원가에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주로 편입하자는 주장도 반복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가 번영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어쩌면 머지않아 번영하는 51번째 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1번째 주로 만들고 대통령 대신 주지사를 뽑자”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선거를 앞두고 텍사스를 찾은 건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를 포함해 이번이 네 번째다. 공화당의 연방 상원의원 후보 켄 팩스턴 주 법무장관은 민주당의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물가 상승에 따른 비판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중동 상황 덕분에 미국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며 원유 수요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등 미국의 산유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계 생활비 상승이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산유국 미국은 수익을 보고 있다는 논리로 이를 상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는 언론이 자신에 대해 주유소 가격을 잊었다고 비판한다면서 “소비자가 내는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큰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란 공격을 결정할 당시 유가 상승을 예상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트럼프는 “실제로는 유가가 두세 배 더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행할 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시 선택해도 이란을 공격하겠다며 “장기적 이익을 위한 단기적 고통”이라고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전쟁이 “매우 곧” 끝날 것이라는 주장도 반복했다.
이날 유세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루비오는 트럼프가 거듭 부르자 무대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것은 영광”이라며 “텍사스를 사랑한다”고 짧게 말했다.
AP통신은 루비오의 등장을 잠재적 2028년 공화당 대선주자의 이례적인 선거 현장 참여라는 맥락에서 조명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국무장관의 정치 일정 참여에 대해 국무부 관계자는 루비오가 국무장관이 아닌 국가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동행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루비오를 쿠바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 15분 만에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농담도 했다.
트럼프는 의약품 관세를 단계적으로 200% 이상으로 높여 제약사들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겠다는 기존 입장도 다시 밝혔다. 미국에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짓도록 시간을 주되, 이후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수입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2년간 무관세를 유지한 뒤 1년간 100%, 이후 200%로 관세를 높이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날 저녁 텍사스주 러벅에서 이어진 유세에서는 석유·가스업체에 대한 메탄 배출 규제 완화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가 소규모 사업자들을 짓눌렀다며 “소비자와 에너지 생산자의 비용 450억 달러를 절감하기 위해 비싸고 불필요한 메탄 규제를 공식적으로 끝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텍사스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중간선거 결과를 존중하겠느냐는 질문에 “정직한 선거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러벅 유세에서는 공화당 의석을 지켜야 한다며 “아주 팽팽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친 듯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쪽보다는 긍정적인 쪽에서 일하고 싶다”며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할 경우 거부권으로 맞설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