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LA 한인타운 주택가 한가운데서 차량 7대가 잇따라 파손된 사건은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벽돌을 든 채 차량을 마구 부수고 다닌 한인 남성은 마약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사건 발생 직후 연달아 911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끝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상자가 없고 용의자가 현장을 떠났다는 게 이유였다. 일부 피해자는 불안에 떨며 길거리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경찰차 사이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결국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본지에 제보를 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올림픽경찰서의 레이첼 로드리게즈 서장은 경관이 출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답변을 내놨다. 신고자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신고 횟수와 상관없이 ▶부상자 발생 ▶총격 사건 ▶용의자의 현장 범행 진행 여부 등을 우선순위로 두고 출동한다는 것이다. 서장의 말대로라면 신고자는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 것처럼 연기라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서장은 기자에게 관할 내 전담 경관(Senior Lead Officer)의 연락처를 건네며 피해자들과 공유하라고 권했다. 911 신고에도 묵묵부답인 경찰이 전담 경관에게 연락한다고 당장 달려오겠는가. 더욱이 911보다 전담 경관의 번호가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이 과연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기물 파손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서장의 해명은 한인타운의 치안을 책임져야 할 경찰이 한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소외감, 그리고 깊어진 불안감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조차 외면한 현장에 기자가 직접 찾아가자, 그제야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나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언제든 무차별적 위협이 사람을 향할 수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우려했다.
실제로 차량을 부수고 다닌 용의자는 이전에도 수차례 화분을 집어던지는 등 위협을 가해왔고, 사건 현장 바로 앞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진다 해도 주민들이 제때 경관의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내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위협하는 생활 속 위험 요소조차 막지 못한다면, 어느 시민이 공권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결국 경찰을 만나려면 누군가 피를 흘리거나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야만 하는가. 오늘날 LA가 처한 안타깝고도 씁쓸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