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남 해남 파인비치 골프장에서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72개 홀에서 유해란(25)이 그린을 놓친 건 여섯 번뿐이었다. 2라운드에선 18개 홀 모두 그린에 공을 올렸고, 1·3라운드엔 17번씩 올렸다. 비바람이 몰아친 최종 라운드에서 네 번 놓쳤다. 대회 그린 적중률은 91.7%였다.
통계가 지금처럼 세분화되기 전, 선수들은 라운드를 마친 동료에게 “오늘 그린을 몇 번 맞혔느냐”고 물었다. 그린을 많이 맞혔으면 잘 친 날, 아니면 못 친 날이었다. 퍼트도 중요하지만 투어 선수들 사이의 퍼트 실력 차이는 상대적으로 작다. 드라이버와 아이언의 능력이 모두 담긴 그린 적중률이 실력을 가르는 잣대인 이유다.
메이저 골프 투어에서 시즌 그린 적중률 80%는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이다. 여자 골프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아니카 소렌스탐은 전성기에 모든 샷을 핀에 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최고 기록은 2002년 79.74%, 2001년 79.70%였다.
아이언을 유난히 잘 친 고진영은 2019년 LPGA 투어 최장인 114홀 연속 노보기 기록을 세우는 등 놀라운 골프를 했다. 타이거 우즈의 PGA 투어 기록(110홀)보다 긴 기록이다. 그런 고진영도 그해 그린 적중률은 79.56%였다.
자료 : LPGA
유해란의 올 시즌 그린 적중률은 79.87%다. 1098개 홀에서 877번 그린에 공을 올렸다. 지금 기록으로는 LPGA 투어 역대 1위다.
경쟁자들과도 차이가 크다. 유해란의 주요 경쟁자인 넬리 코다(미국)와 지노 티띠꾼(태국)은 손꼽히는 롱게임을 갖춘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 부문 2위인 티띠꾼이 75.79%, 세계랭킹 1위 코다는 71.91%다.
남자 골프와 견줘도 놀라운 숫자다. 타이거 우즈의 가장 뛰어난 시즌이던 2000년 기록이 75.15%다. 현역 최고 선수 스코티 셰플러(미국)도 가장 좋았던 2023년 74.47%로, 유해란과 5%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다. 코스가 길고 그린이 단단한 남자 대회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유해란의 숫자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가늠할 수 있다.
유해란은 80%를 넘을 수 있을까. 그는 남은 LPGA 투어 공식 대회 4개 가운데 토토 재팬 클래식을 뺀 3개 대회에 나간다. 코스가 비교적 쉬운 토토 재팬 클래식에 나가면 기록 관리에 유리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경기하기로 했다. 남은 3개 대회 216홀을 모두 치르면 시즌 합계는 1314홀이다. 80%를 넘으려면 이 가운데 1052홀에서 그린을 맞혀야 한다.
거꾸로 보면 더 실감이 난다. 남은 12라운드, 216홀에서 유해란이 놓쳐도 되는 그린은 41개다. 한 라운드에 세 번 남짓이다. 네 번 놓치는 날이 이어지면 80%는 멀어진다.
80%를 넘지 못하더라도 소렌스탐을 넘어설 가능성은 크다. 남은 216홀에서 45번까지 놓쳐도, 즉 171번(79.2%)만 그린에 올려도 시즌 적중률이 79.76%가 돼 소렌스탐의 기록을 넘는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숫자다.
유해란이 지난 23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2라운드 6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유해란은 이날 그린적중률 100%를 기록했다. 사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대회 조직위
남은 12라운드, 유해란이 라운드 평균 15번 그린을 맞히면 80%를 넘는다. 14번에 그치면 소렌스탐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한 라운드에 그린 하나, 그 차이가 역사를 가른다. 소렌스탐도, 고진영도 넘지 못한 벽까지 남은 여유는 41번의 실수다. 그 벽을 넘는다면 유해란은 가장 정확하게 공을 친 선수로 이름을 새긴다. 그 기록은 깨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누구도 넘지 못할 숫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