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앙카라대학교와 공동으로 발굴조사 중인 튀르키예 카이세리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0년)의 모자이크 유구와 서로 중첩된 4개 문화층을 확인했다. 사진은 지난 여름 퀼테페 유적에서 한국과 튀르키예 공동조사단이 현장설명회를 하는 모습.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에서 직선거리로 약 7500㎞ 떨어진 튀르키예 중부 내륙의 퀼테페 유적. 고대 아나톨리아의 교통·교역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지난해 8월 한국의 발굴조사단이 도착했다. 1차로 45일간 조사하고 올해 여름 2차 조사를 하던 중 지표면에서 2m가량 파내려간 지층에서 뜻밖의 흔적이 나왔다.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0년) 토기들이 나뒹구는 가운데 바닥 표면을 모자이크로 장식한 건물 터가 발견된 것.
이 일대 고대문명에서 모자이크 유구(遺構·일종의 건물지)는 종교 제례 등과 관련된 신성한 곳이란 의미로 그런 건물지가 나왔다는 건 이곳이 헬레니즘시대에도 번성한 대도시였단 뜻이다. 관련 문헌에 기록돼 있긴 해도 실물로 확인된 건 1948년 퀼테페 유적 발굴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라 “불과 1년여 만에 이룩한, 유례없는 성과”(피크리 쿨라코을루 앙카라대 교수)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이 같은 성과를 공개하는 한국·튀르키예 합동간담회가 열렸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초청한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측에선 뷜렌트 괴뉠타쉬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퀼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점토판의 레플리카(복제품)를 들고 왔다. 고대에 카네시로 불린 퀼테페에선 아시리아 상인의 거래 장부라 할 설형문자 점토판이 2만3500여점이나 쏟아졌고 이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다. 퀼테페 유적 자체도 2014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이번 성과가 세계유산 등재를 앞당기는 데 도움 될 것”(쿨라코을루 교수)이란 평가가 나왔다.
지난 27일 퀼테페 유적의 공동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한국·튀르키예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의 뷜렌트 괴뉠타쉬(왼쪽)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과 피크리 쿨라코을루 앙카라대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괴뉠타쉬 부총국장 앞에 놓인 것은 퀼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점토판의 레플리카(복제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퀼테페 점토판을 튀르키예 측이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강혜란 기자
이번에 확인된 모자이크 유구 규모는 동서 163㎝, 남북 165㎝ 가량이다. 지면을 고른 뒤 깨진 돌과 고운 흙으로 기초를 조성하고, 그 위에 작은 강자갈을 깐 다음 토기 조각과 석회 등을 이용해 바닥면을 마감한 모양새다. “관련 흔적으로 볼 때 원래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며 일종의 복합단지가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공동조사단 김대영 학예연구사)고 한다. 같은 문화층에서 특정 문자(수량 혹은 장인 이름 표시)가 새겨진 헬레니즘 토기도 나왔다. 애초에 퀼테페 유적은 아시리아·히타이트 등 청동기 문명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는데 “튀르키예 해안가뿐 아니라 내륙 깊숙이 헬레니즘문명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재조명될 전망”(공동조사단 최지연 앙카라대 박사수료)이다.
김경진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앙카라대학교와 공동으로 발굴조사 중인 튀르키예 카이세리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0년)의 모자이크 유구와 서로 중첩된 4개 문화층을 확인했다.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 모자이크 유구(건물지 추정)가 확인된 것은 1948년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헬레니즘 문화층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바닥의 유구.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퀼테페 유적에서 발굴이 완료된 건 전체 면적의 약 3%에 불과하다. 쿨라코을루 교수는 “구석기부터 로마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문화층이 케이크처럼 쌓여있는 곳”이라면서 “한국팀이 이번에 헬레니즘 4개 문화층을 발견했는데, 내년 3차 조사 이후에도 중요 성과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당 유적에선 미국·이탈리아·일본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발굴조사도 진행 중으로 “(이들과 비교해) 한국팀은 한마디로 똑부러지는 팀이다. 물리탐사 등 준비체계가 확실하고 전문인력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도 덧붙였다. 괴뉠타쉬 부총국장은 “고대문명 요충지인 튀르키예에선 연간 800여곳의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지금까지 28개국이 발굴에 참여했다”면서 “한국의 디지털 복원 등 기술력을 도움받고, 튀르키예는 좋은 유물과 유적 경험을 제공하는 상호 발전을 기대한다”고 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앙카라대학교와 공동으로 발굴조사 중인 튀르키예 카이세리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0년)의 모자이크 유구와 서로 중첩된 4개 문화층을 확인했다.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 모자이크 유구(건물지 추정)가 확인된 것은 1948년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헬레니즘시대 문화층에서 발견된 토기 모습.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은 2000년대초 발해 유적이 있는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시작으로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북방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발굴 조사에 참여하면서 한반도 고대문화의 형성과 전파 과정 등을 탐색해 왔다. 튀르키예 유적 조사는 한국사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세계 고대문명에 대한 공동연구로 조사 영역을 확대한 새로운 전환점”(국립문화유산연구원 박윤정고고연구실장)에 해당한다. 해외 주요기관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K고고발굴의 학술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한국고고학)는 “한국의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ODA(공적개발원조) 차원에서 고고발굴 협력을 희망하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양적 팽창에 머무르지 말고 질적인 공동연구와 체계적인 관리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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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테페 유적=기원전 3000년경부터 로마시대까지 번성한 고대 도시 유적. 히타이트 제국 이전 카네시(네샤)왕국의 수도였으며 히타이트 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전체 취락 직경은 최소 2.5㎞로 상부도시에는 왕궁과 신전이, 하부도시에는 상업 중심지이자 거주구역인 카룸(Karum)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2만3500점의 점토판은 고대 근동지역의 가장 중요한 개인문서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