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개 기업 지원 … 지속률 80% 넘어 파리·뉴욕서 팝업 등 해외 판로 넓혀 ‘오늘전통랩’ 개관 등 일상 접점 확대
김경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전통의 가치를 오늘의 쓰임으로 연결하고, 산업의 경쟁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공진원]
“과거의 전통문화 지원이 개별 사업 단위였다면, 이제는 만들고 알리고 팔고 소비자가 즐기는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통문화가 보존의 대상을 넘어 일상에서 쓰이고 세계가 찾는 K-라이프스타일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 김경배 원장이 밝힌 전통문화 산업의 성장 방향이다. 올해 4월 취임한 김 원장은 영국 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30년 경력의 디자인 전문가다. 그는 전통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오늘의 쓰임으로 연결하고, 산업의 경쟁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Q : 취임 후 전통문화산업 현장을 살펴보며 느낀 점은.
A : “전통문화 산업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했다. 국내 전통문화 업계는 5인 미만 사업체가 약 75%, 매출 100억원 미만 기업이 약 98%일 만큼 구조가 영세하고 판로 부족도 여전하다. 반면 MZ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즐기는 ‘힙트레디션’ 소비가 확산하고 K-컬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산업디자이너 출신으로서 보기에 전통문화가 산업 경쟁력을 갖추려면 결국 생산·매개·향유·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생태계’가 필요하다. 전통문화가 세계와 미래를 잇는 K-라이프스타일 산업이 되도록 돕는 것이 공진원의 역할이다.”
Q : 2020년부터 ‘오늘전통창업’ 사업을 진행해 왔다.
A : “그동안 예비기업을 포함해 총 460개사를 지원했다. 초기창업기업과 도약기업 170개사의 누적 매출은 600억원을 훌쩍 넘고, 유치한 투자금도 30억원에 달한다. 특히 사업에 참여한 초기창업기업의 지속률이 80%를 웃돌 만큼 일반 창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전문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 AC)가 기업을 1 대 1로 맡아 성장 과정을 함께하고, 예비·초기·도약·선도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를 마련한 것이 차별점이다.”
전통 백자에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현대적인 생활도자로 양산하는 ‘무자기’ 매장.
Q :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꼽는다면.
A : “도자 브랜드 ‘무자기’다. 전통 백자에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현대적인 생활도자로 양산하는 업체다. 박물관 유물이 아닌, 소비자가 당장 식탁에 올리고 싶은 디자인을 구현하며 도약기업으로 지원받은 2년간 총매출 62억원을 기록하고 주요 유통 채널 15곳을 확보했다. 올해는 선도기업으로 파리 메종&오브제에 참가해 까다로운 유럽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복 브랜드 ‘리슬’이 선보인 2027 S/S 컬렉션.
Q : 선도기업 육성과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데, 현지 반응은 어떤가.
A : “개별 영세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외 유통망을 뚫기는 벅차다. 그래서 올해 선도기업 육성 사업을 신설하고 전문 무역상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반 수출을 지원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0월 12~18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한복 브랜드 ‘리슬’ 팝업스토어를, 14~18일에는 K-브랜드 쇼케이스인 ‘KOOM Week’ 팝업을 열었다. 일상복으로 재해석된 한복과 세련된 소품들이 현지 2030세대에게 힙한 패션 아이템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전통문화 해외거점 프로모션’ 사업을 통해 올해 12개 기업의 해외 박람회 참가를 지원해 상담 664건, 계약 34건의 성과를 거뒀다. 현장에서 확보한 관심이 실제 계약과 지속적인 거래로 이어지도록 후속 문의와 거래 진행 상황까지 살피며 해외 판로 확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9월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운영한 한지 홍보관 ‘HANJI HOUSE’.
Q :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한지 홍보관을 선보였다.
A : “한지 기업 7곳과 90㎡ 규모의 홍보관 ‘HANJI HOUSE’를 운영해 상담 215건, 거래 22건의 성과를 거뒀다. 알레시·리모와·불가리·헤이 등 글로벌 브랜드와 건축·디자인 관계자들이 부스를 찾았고, 참가 기업 한 곳은 글로벌 명품기업과 프로젝트 협업도 성사시켰다. 한지가 원지부터 문구·조명·가구까지 쓰임을 다각도로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인한 자리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한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일상에서 접할 기회도 확대할 계획이다.”
Q : 지속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A : “전통문화는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쓰고 사는 경험’으로 확장돼야 한다. 11월 5~15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에서 ‘취향유람’을 개최하는데, 내년 개관할 ‘오늘전통랩’의 프리뷰 전시다. ‘오늘전통창업’ 참여 기업 약 70개사의 제품 200여 점을 전시·판매하는 마켓을 비롯해 시즌 오브제 전시, 전통문화 체험 클래스 등을 마련했다. 11월 12~15일엔 ‘2026 오늘전통축제’를 연다. 다양한 브랜드와 공연·체험을 통해 전통문화의 매력을 폭넓게 알리는 행사다.”
선도기업 ‘온고’의 제품들.
Q : ‘오늘전통랩’은 어떤 곳인가.
A :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전통문화 창업 보육부터 비즈니스 확장까지 한곳에서 지원하기 위해 조성하는 핵심 거점으로, 내년 상반기 서울 인사동에서 문을 연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판매 공간이 아니다. 1층은 전통문화 상품과 콘텐츠를 선보이고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전통문화 팝업 ‘테스트마켓’과 한지 전문 소재 라이브러리 및 쇼룸 ‘한지가헌’으로 구성된다. 2층은 강연·세미나 등이 열리는 네트워킹 공간과 상설 라운지, 3층은 전통문화 산업 관계자들을 위한 공유 공간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지하 1층에는 다양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 공간도 계획 중이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전문 교육과 상담을 통해 구체화하며, 이를 시장에서 검증하고 판로를 넓혀가는 전통문화 창업의 전주기 생태계가 이 건물 하나에서 순환하도록 지원할 것이다.”
Q : 앞으로의 과제는.
A : “초기에서 도약, 선도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를 끊김 없이 유지하고, 해외 진출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후속 거래와 판로 확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과제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 지원을 이어가겠다. 이 분야 창업가들이 전통이 가진 유구한 이야기를 오늘의 소비자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상품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공진원이 그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