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경윤 특파원 = 미국 노동운동계 대모로 꼽히는 돌로레스 우에르타가 2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NBC뉴스는 우에르타가 암 투병 끝에 캘리포니아주(州) 베이커스필드 자택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우에르타는 1960∼1970년대 미국농장노동자연맹(UFW)의 이인자이자 이민자·여성 권리를 주장해 온 시민운동가이기도 했다.
세사르 차베스가 미국농장노동자연맹의 간판이었다면, 우에르타는 노조의 힘을 보여줄 불매운동과 동맹휴업을 기획하고 조율해내는 조직가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0년 뉴멕시코주 도슨의 멕시코계 가정에서 태어난 우에르타는 부모님 이혼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외가에서 자랐다.
스톡턴 칼리지에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후 라틴계 민권 단체인 '커뮤니티 서비스 조직'에서 일하며 시민사회 운동에 발을 들였다.
1955년 차베스를 만났고, 농촌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이라는 목표하에 전미농장노동자연맹(NFWA)을 공동 창설한다. 이는 미국농장노동자연맹의 전신이다.
당시 미국 농장에서 일하는 이민 노동자들의 처우는 형편없었다. 우에르타와 차베스가 이끄는 노조는 시위와 파업, 불매운동 등을 통해 노동 처우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1975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농업노동관계법이 통과되면서 농장 노동자가 의료보험과 연금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에르타는 여성과 이민자 권리 향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국을 오가며 투표권과 이민자, 환경, 성(性)소수자를 위한 비폭력 시위를 열었고,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20여차례 체포됐다.
1988년에는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당시 우에르타는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으로부터 82만5천달러(약 11억원)의 합의금을 받았으나, 이를 이주 노동자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89세의 나이에도 간호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확성기를 들고 행진을 이끄는 젊고 맹렬한 라틴계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우에르타였지만, 남성 중심의 노동계 속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겪기도 했다.
특히 동료 운동가이자 노동운동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차베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이에 대해 오랜 시간 침묵하다가 약 60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이를 공개했다.
도밍고 가르시아 전미 라틴아메리카 시민연합 전 회장은 "그는 세사르만큼 강인한 인물이었고, 미국 역사의 숨은 영웅"이라며 "돌로레스는 용기를 상징했다. 불이익이 따를 수 있는 일이라도 올바름과 정의의 편에 섰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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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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