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로 불리던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수사반장’의 정의로운 경찰이자 ‘전원일기’의 인자한 가장,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 지킴이였던 그는 단순한 연기자를 넘어 ‘시대의 어른’이었다.
29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이날 밤 10시께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2011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고, 이후 재활에 힘써왔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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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이 문인들 보며 자란 소년
1939년(호적상 1940년)생인 그는 ‘한국인 아버지 상’으로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를 잘 모르고 자랐다. 인천에서 영화사(건설영화사)와 신문사(인천일보)를 운영했던 선친은 35세였던 1948년 무렵 과로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회사에서 제작한 영화 ‘수우(愁雨)’의 개봉을 불과 며칠 앞둔 때였다. 여덟 살 소년 최영한은 아버지 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정을 안고 시사회에 참석했다.
명동 낭만시대 대표명소 은성주점 분위기를 되살린 명동백작.. 은성주점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막걸리 주점이다. 명동백작 내부에 은성 간판을 걸고 당시 골목 분위기를 재현했다. [중앙포토]
그를 키운 건 어머니 고(故) 이명숙 여사와, 그가 명동에서 운영하던 전설적인 선술집 ‘은성’이었다. 시인 김수영,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등 당대 최고의 문인, 예술가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던 곳이었다. 가게는 명소가 됐지만 그럴수록 외상은 늘어만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라면박스에 외상장부가 가득했다. 펴보니 이름은 하나도 없고 ‘안경’ ‘코주부’ ‘꺽다리’ 하면서 별명만 써있었다. 예술하는 가난한 사람들 자존심을 세워주고 그 사람들 비밀을 지켜주려고 했던 것 같다.”(2002년 국민일보 인터뷰)
연기의 길로 들어선 건 중앙고 시절 연극부에 들면서부터였다. 대학(서라벌예술대학) 시절엔 연출도 전공했다. 이때 연기전공 학생들이 맡기를 꺼려하던 노인 역을 자주 맡다가 아예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1959년엔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의 주연으로 데뷔했고, 1960년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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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老役) 전문 배우로…가짜 주름 안에 숨긴 진심
그는 20대부터 가짜 주름으로 분장하고 노인의 삶을 그려냈다. KBS텔레비전 연기자로 데뷔한 1967년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을 맡았을 때 불과 스물일곱이었다. 최불암은 2008년 본지 인터뷰에서 “‘수사반장’(1971~1989) 때 내가 30대였는데 50대 역을 했고, ‘전원일기’(1980~2003) 김 회장 때는 마흔 때 65세 역을 했다”며 “그러다보니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젊어 보인다니 소리 들었다”고 말했다.
수사반장을 연기한 인연으로 2024년 명예 국가수사본부장(명예 치안정감)으로 위촉된 배우 최불암이 28일 경찰청 참수리홀에서 열린 우수 수사팀 특진 임용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뉴스1]
주름은 가짜였지만 연기에 담긴 마음은 진짜였다. “브라운관에서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는 ‘수사반장’ 당시 연기 자문을 구했던 최중락 전 총경이 새벽 3시에 전화해 “지금 당장 나와서 현장을 봐야 해”라고 말하면, 정말 경찰처럼 차 위에 사이렌을 얹은 채 현장으로 달려갔다.
‘전원일기’에서 구걸하던 ‘금동이’를 양자로 들인 에피소드를 연기한 후엔 ‘한국어린이재단(현 초록우산)’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에서 선장 역할을 맡았을 땐 뱃사람들의 삶을 보려 부산 등지를 헤맸다. 교양 프로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서 본부장(MC)으로 출연한 후엔 그 좋아했던 담배도 끊었다.
그의 ‘과몰입’은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표출됐다. ‘수사반장’ 속 박영한 형사가 트렌치 코트를 입으며 담배 네 개비를 피우는 것 설정도 그가 다 생각해 낸 것이다. 그 덕에 고 육영수 여사에게서 직접 절연을 제의 받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1972년의 어느 날 육 여사는 최불암의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양반(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한 50분 사이에 넉 대를 태우세요. 저 양반이 피우는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온 국민이 전부 따라서 담배를 피울 거 아닙니까? 담배 피우는 장면을 조금 줄이면 어떨까요?”(최불암 에세이집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오래된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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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도도…2014년 끝으로 연기 사실상 은퇴
'통일국민당' 종로지구당창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최불암(오른쪽에서 두번째). [중앙포토]
정치를 한 적도 있다. 배우 이순재·강부자·최불암과 함께 14대 국회의원(1992~1996년) 배지를 달았다. ‘전원일기’의 열혈 팬이라는 이유로 인연을 맺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권유로 통일국민당의 비례대표가 됐다. 그러나 15대 총선 때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를 구호로 내세운, 당시 31살의 김민석 후보(현 국무총리)에게 졌다. 낙선 직후 인터뷰에서 최불암은 “낙선했다고 (정치를) 당장 포기하는 건 정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인터뷰 했지만, 다신 정치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에는 언제든 앞장섰다. 1981년부터 초록우산 홍보대사와 후원회장을 맡았다. 지난 2012년엔 사단법인 ‘제로캠프’를 만들어 학교 밖 청소년들을 교화하는 활동을 해 왔다. 소년 수형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뮤지컬 무대를 수년 간 만들었다. 그의 아내 김민자(83) 배우 역시 청각장애 아동을 후원하는 ‘사랑의 달팽이’ 회장을 18년이나 맡았다. 1990년대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편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파하~’ 웃는 모습이 전국민에게 친숙했다.
그는 2014년 SBS 드라마 ‘기분 좋은 날’을 끝으로 연기를 사실상 은퇴했다. 2024년 OCN 드라마 ‘수사반장 1958’ 등에서도 특별출연 정도만 했다. 이에 대해 그는 2018년 출연한 예능 ‘집사부일체’에서 “은퇴가 아니라 물러남”이라며 “(스태프에게) 지적도 받고 해야하는데 다들 (나이 많다고) 어려워하니 발전이 없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시장 상인과 악수하는 최불암. [중앙포토]
교양 프로 ‘한국인의 밥상’(2011~2025) MC 등으로는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이 마저도 지난해엔 배우 최수종에게 배턴을 넘겼다. 건강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허리 협착증이 심해졌고, 두 번의 입원과 재활훈련을 거쳐서 많이 나았지만 ‘이제 후배에게 자리를 넘길 때가 됐다’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74·1978)·연극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69·1971),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78)·남우주연상(1979), 국민훈장 목련장(1998), 은관문화훈장(2014)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