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시장 재편 과정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확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 자동차 업체의 저가 공세와 기술 추격, 여기에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겹치며 질적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현대차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감소한 45조1102억원, 글로벌 판매량은 11.3% 감소한 92만710대라고 밝혔다. 현대차의 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6년 만이다. 다만 영업이익은 5.5% 증가한 2조6772억원을 기록했다. 원가 절감 노력과, 수익성 높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호조에 힘입어 탄탄한 기초체력을 입증했다.
차준홍 기자
하지만 최대 시장인 미국의 관세가 25%에서 15%로 줄었다는 점, 지난해보다는 우호적인 환율 여건 등을 감안하면 마냥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이날 현대차는 연간 판매 목표(415만대→400만대)와 영업이익률(6.3~7.3%→5.5~6.5%)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현대차뿐 아니라 국내 중견 완성차 3사인 한국GM·르노코리아·KG모빌리티도 고전 중이다. 특히 중국 비야디(BYD) 등 수입차 점유율이 높아지며 이들 3사의 지난달 내수 판매량은 5116대로 전년 동월 대비 46.2% 줄었다. 테슬라 ‘모델Y’ 한 차종의 국내 판매량(1만1421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신차 한두 종에 의존하는 판매 구조로는 테슬라의 브랜드 경쟁력과 중국차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 부품 생태계와 직결된다. 이항구 남서울대 특임교수는 “국내 자동차 생산량 400만대 선이 무너지면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앞으로 5년이 골든타임”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410만대다.
전문가들은 우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과거의 고수익 시대를 지났다고 분석한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는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쟁 업체는 늘었다. 앞으론 영업이익률 6~8%가 현실적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차_3분기_매출·영업이익_추이-콤보_차트-2
글로벌 시장의 판을 바꾸는 축은 낮은 생산원가와 개발 속도를 앞세운 중국 자동차 업체다. 이항구 교수는 “중국 업체의 생산원가는 한국보다 30% 이상 낮은데, 로봇·무인공장까지 확대하며 생산비를 더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간 K-자동차의 수익성을 떠받쳐 온 하이브리드차(HEV) 시장까지 넘본다. 시장조사업체 모빌리티글로벌에 따르면 아세안 지역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생산의 약 95%를 중국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모빌리티글로벌은 현재 160만대 수준인 중국 업체들의 해외 생산량이 2033년 630만대(유럽 300만대, 남미 180만대, 남아시아 15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신차 개발 기간도 기존 완성차 업체(36~48개월)의 절반 수준인 18~24개월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뿐 아니라 생산 효율성과 신차 개발 경쟁력까지 동시에 높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영희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국산차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글로벌 생산 역량’을 돌파구로 꼽는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는 생산 표준화와 자동화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외 어느 지역에서도 빠르게 효율적인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미래차 경쟁력을 챙기면서도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올해 자동차 부문 투자 계획을 당초 17조8000억원에서 16조원으로 조정한 것도 중복 투자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한솔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통 플랫폼과 부품 표준화로 투자 효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짚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국내 인건비 등을 고려해 내수 시장은 고부가가치 중·고가 차량에 집중하고, 중저가 모델은 철저히 해외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투트랙 전략’이 해법”이라고 분석했다.
박경민 기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등 신사업을 성과로 입증하는 것도 과제다. 지난 6월 75만원까지 올랐던 현대차의 주가는 29만2000원으로 61.2% 내렸다. 문용권 연구원은 “스토리만으로 주가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며 “결국 실적이 뒷받침돼야 성장 기대감도 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필요성도 제기된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이 국가 주도로 자국 산업을 육성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필수 교수는 “중국의 거센 공세를 기업 홀로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은 물론, 국내 자동차 안전 및 환경 기준 등 비관세 장벽을 정교하게 다듬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을 쥘 자율주행 기술력 강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