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피자 마에스트로 이진형 재료 속 숨겨진 엄격한 기준·가치 15년 연구의 결실로 전문서 출간 정통성 이을 전문 교육기관 열어
최근 『베라 피자』를 출간한 이진형 피자 마에스트로.
피자 끝부분에도 정해진 높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치즈나 고구마 무스를 채워 넣기도 하는 피자의 가장자리, 코르니초네 이야기다. 정통 나폴리 피자는 이 부분의 높이를 1~2㎝로 규정한다. 소스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으면서도 먹기 편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반죽 재료부터 화덕에서 굽는 시간까지 기준이 있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엄격하다. 나폴리 피자 장인의 기술과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2018년 이탈리아 피자 학교에서 실습 당시.
이런 나폴리 피자를 15년 가까이 연구해 온 한국인이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핏제리아오를 운영하는 이진형 희스토리푸드 부대표다. 그는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피자 장인인 ‘마에스트로’ 인증을 받은 피자 마스터이기도 하다. 30년 전 이탈리아 배낭여행에서 처음 맛본 피자를 잊지 못해 2013년 핏제리아오를 열었다. 이후 이탈리아를 오가며 피자 기술을 익히고 국제 대회에도 참가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쌓은 지식을 정리한 책 『베라 피자』를 펴내고, 나폴리피자협회(AVPN)의 교육기관인 베라피자스쿨 한국분교도 열었다. 이 부대표를 만나 나폴리 피자와 함께한 지난 15년의 이야기, 책과 학교를 만든 이유를 물었다.
베라피자스쿨 한국분교 데일리반에서 수업 중인 모습.
Q : 30년 전 맛본 나폴리 피자의 무엇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나.
A : “원래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어릴 때 미국식 피자도 맛있게 먹었는데, 이탈리아에서 먹은 피자는 달랐다. 버터나 설탕, 기름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 그런 빵과는 다르게 밀가루의 구수한 향 자체가 좋았다. 나폴리 피자 반죽에는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 네 가지만 들어간다. 그 단순한 재료에서 나오는 맛이 신기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탈리아 피자 학교에서 동료 수강생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Q : 2013년 핏제리아오를 열 당시에는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다던데.
A : “당시에는 시카고 피자가 대세였다. 나폴리 피자는 얇고 토핑도 단순하니 한국에서 안 될 거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파니니를 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육경희 대표 등 일행과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100판 넘는 피자를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나폴리 피자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는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피자 월드컵에서 1위를 차지한 당시 모습.
Q : 그렇게 시작한 핏제리아오가 어느덧 13년째다. 반대를 무릅쓰고 열었는데 어땠나.
A : “막막했다. 매장이 대학로에서도 안쪽 골목에 있었던데다 우리를 아는 사람도 적어 알릴 곳도 없었다. 겨울에는 장사가 정말 안됐다. 이후 방송에 소개되면서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방송에 나온 돌체(초콜릿)피자만 찾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피자와 음식도 맛보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겼다. 2022년 매장을 이전한 뒤에도 손님들이 찾아오고 매출의 등락 폭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안정됐다고 느꼈다. 결국 시간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Q : 나폴리 피자는 코르니초네의 높이까지 규정한다. 왜 그렇게 엄격한가.
A : “나폴리 피자는 전체적인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코르니초네가 없으면 소스가 밖으로 흘러내리기 쉽고, 너무 높으면 먹거나 손으로 들기 불편하다. 그래서 높이를 1~2㎝로 규정한 것이다. 중요한 건 나폴리 피자가 어떤 음식인지 명확한 기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반죽부터 성형, 굽는 방식까지 규정이 있으니 무엇이 정통 나폴리 피자인지 설명할 수 있다.”
Q : 좋은 나폴리 피자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A : “하나만 꼽을 수 없다. 밀가루를 잘못 선택하면 반죽이 달라지고, 반죽과 발효가 잘못되면 식감이 달라진다. 성형할 때 잘못 눌러도 문제가 생긴다. 마지막에 제대로 굽지 못하면 그동안 잘 만든 것도 소용없어진다. 나폴리 피자는 높은 온도에서 60~90초 정도 짧게 굽는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도 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된 피자가 나오지 않는다.”
나폴리 피자 전문서 『베라 피자』. [사진 비앤씨월드]
Q : 최근 출간한 『베라 피자』는 304쪽에 달한다. 책을 쓰게 된 이유는.
A : “피자를 만들거나 피자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레시피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왜 이런 반죽을 쓰고, 왜 이렇게 구워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피자의 역사와 문화부터 재료, 제조 과정의 과학적 원리까지 담았다. 피자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빵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됐으면 한다.”
Q : 책이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A :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았다. 반죽법만 해도 수십 가지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나폴리 피자의 제조 기준이 바뀌면서 이미 써놓은 원고를 다시 확인하고 수정해야 했다. 지금 책에 실린 내용도 내가 알고 있는 피자의 일부다. 앞으로는 이탈리아 지역별 피자와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 피자집 운영을 다룬 경영서도 쓸 계획이다.”
Q : 책에 이어 베라피자스쿨 한국분교까지 열었다. 학교를 세운 이유는.
A : “갈수록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느꼈다. 피자집을 운영하면서 직원을 가르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피자는 보기보다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음식이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전 매장에서는 공간이 부족했지만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교육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Q : 직접 교육기관을 운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베라피자협회와 함께했나.
A : “내 이름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보다 베라피자라는 이름으로 교육하는 것이 정통성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협회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학교 개교식에도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 과거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다시 만났고, 함께 피자를 구우면서 관계자들에게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있었다. 이후 협의가 진전됐다.”
Q : 베라피자스쿨에서는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나.
A : “베라피자스쿨 한국분교는 전문 피자이올로를 양성하는 교육과 일반인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전문 교육인 베라피자반은 8일간 이론과 실습을 배우고 평가를 치르는 과정이다. 별도의 특별반에서는 다양한 반죽과 피자 제조법을 익힐 수 있다.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래스도 있다. 일반인을 위한 3시간짜리 ‘피자 데이’인데, 대표적인 나폴리 피자인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