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 할 수 있어요. 맡겨만 주시면” 배우 박준면은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고 소개한다.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것이 배우로서 30년을 살아온 방식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첫 연극 오디션에 합격해 무대에 선 이후, 맡겨진 일로 역사를 만들었다.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었으며, 직접 곡을 써 음반도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김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모두 일에 대한 그의 우직한 태도가 쌓아 올린 궤적이다. 얼마 전에는 출판사의 제안으로 요리책 『박준면의 낯가리는 레시피』를 펴냈다.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 60여 가지와 요리에 얽힌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떻게 이토록 다방면에서 거침없이 활동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맡겨만 주면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웃는 그를, 지난 19일 상암동에서 만났다.
집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요리 60여 가지를 묶어 요리책을 낸 박준면 배우는 “요리는 소울(영혼)”이라며 “스트레스를 나 자신을 돌보는 소중한 시간을 바꾸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포레스트네트워크]
Q : 책을 내고 대형 서점에서 사인회까지 열었어요.
A : “예전에 힘들거나 온전히 쉬고 싶은 날이면 교보문고를 자주 찾았어요. 책들 틈에서 서성이며 위로를 받곤 했거든요. 그런 공간에서 제 책에 직접 사인을 해드리게 된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정말 벅찬 일이었어요. 제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제가 유독 좋아하던 그 공간에서 독자들을 만났다는 경험 자체가요. 2026년 제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에요.”
Q : 요리책 출간 제안은 어떻게 받게 되었나요.
A :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니에요. 2015년에 결혼하면서 집에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했으니, 집밥을 해온 지 이제 겨우 10년 남짓이죠. 그러다 유튜브 채널 ‘박준면의 낯가리는 레시피’를 시작했는데, 출판사에서 그 영상을 보고 단행본으로 묶어보자고 제안했어요.
A : 막상 책으로 옮기려니 어려운 점도 많았어요. 정밀하게 계량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대충 이만큼 넣고, 맛보고 부족하면 조금 더 치는’ 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독자분들이 따라 하려면 정확한 분량을 제시해야 하잖아요. 밥숟가락 기준으로 몇 스푼인지, 식재료를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했죠. 요리하고, 계량하고, 원고를 쓰고, 제법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어요.”
Q : 유튜브 영상은 다른 요리 채널과는 결이 달라요.
A : “요리를 엄청 잘하진 못해요. 대신 양념 배합이나 간을 보는 감각은 확실히 알죠. 반면에 칼질이나 예쁜 계란말이처럼 손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여전히 서툴러요. 계란말이는 지금도 모양을 잘 못 잡아요(웃음). 그런데 시청자분들은 오히려 그런 모습을 친근하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어설픈 손놀림도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A : 그래서인가 댓글 창을 보면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하고 훈수 두시는 분들이 많아요. ‘시어머니’들이 잔뜩 생긴 셈이죠(웃음). 하지만 이런 참견이 정말 좋아요. 댓글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Q : 본인에게 요리란 어떤 의미인가요.
A : “소울(영혼)’이라고 생각해요. 집에서 따뜻하게 밥을 지어먹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거든요. 밖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집에 돌아와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먹다 보면 평온해져요. 나 자신을 돌봐주는 소중한 시간인 셈이죠. 내가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려내는 거잖아요.
A :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맛없는 걸로 억지로 배만 채우는 일’이에요. 바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때도 물론 있지만, 가능하면 늘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어요. 요리가 꼭 거창한 기술을 요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집에서 스스로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봐요.”
박 배우의 아욱국. 쌀뜨물·된장·고추장·코인 육수를 넣은 육수에 아욱과 건새우 콩가루를 넣고 끓이면 완성. [사진 위즈덤하우스]
Q : 책에 수록된 요리 중 단 하나를 꼽는다면요.
A : “파김치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죠(웃음). 어릴 때 대가족 틈에서 자랐어요. 해마다 김장을 몇 백 포기를 담그던 집이었죠. 어머니가 시키셔서 어릴 때부터 배추 나르고 양념 버무리는 일을 도왔는데, 당시엔 그저 해야 하니까 했던 일이에요. 그런데 그 세월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있었나 봐요.
A : 제 손으로 처음 담가본 김치이기도 해요. 배추김치보다 진입 장벽이 낮거든요. 쪽파를 다듬어 맛있는 양념에 버무려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Q : 김치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 “처음부터 사업을 하겠다는 계산은 없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양념박’이라는 별명을 얻고 김치가 화제가 되자, 주변에서 사업 제안이 들어왔어요. 먼저 주도해서 판을 벌인 건 아니죠.
A : 결정하기 전에 김혜수 선배님께도 조언을 구했는데, ‘잘할 수 있을 테니 꼭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늘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 하는 불안정한 면이 있잖아요. 김치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장기적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가는 데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A : 하지만 직접 담그는 것과 대량으로 유통·판매하는 일은 천지 차이더군요. 여전히 완전히 안착했다고 자평하긴 일러요. 김치를 맛있다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은 계시지만, 비즈니스는 또 다른 냉정한 영역이니까요. 적어도 5년 정도는 멀리 내다보고 있어요. 제가 감히 김치 시장이라는 큰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고요. 아직 배울 게 많아요.”
Q : 전곡 자작곡으로 채운 앨범도 냈더라고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는 데 두려움이 없는 편인가요.
A : “능동적으로 일을 기획하고 벌이는 타입은 아니에요. 다만 제 앞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 피하지 않고 부딪쳐보는 편이죠. 앨범 역시 배우로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몹시 허기지고 갈급했던 시절, 제 사비를 들여 만들었어요. 자주 찾던 단골 술집에서 강산에 오빠가 ‘너 노래 한번 직접 써봐라’ 하고 툭 던지시길래 진짜로 곡을 썼죠. 나중에 오빠한테 들려줬더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웃으시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꿋꿋이 곡을 모아 2014년에 자작곡 아홉 트랙을 담은 1집 음반을 냈어요.
A : 음악이든 요리든 치밀하게 계산하고 덤벼든 건 하나도 없어요. 기회가 왔고, 정직하게 뛰어든 것 뿐이죠. 다만 시작한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해냅니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를 오래 재기보다는 일단 부딪치고, 주어진 일에 성실함을 다하는 편이에요.”
Q : 30년 차 베테랑 배우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A : “주인공이나, 특정한 배역에 대한 집착은 없어요. 다만 한 가지 고착된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인상이 푸근하고 순해 보여서인지 따뜻한 캐릭터 제안이 주로 들어오는데, 실은 서늘한 악역도 꼭 해보고 싶어요. 저 그런 연기 못할 사람 아니거든요.
A : 본진은 ‘배우’예요. 앨범을 내고, 책을 쓰고, 사업을 벌여왔지만, 이 모든 것은 배우라는 단단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일 뿐이죠. 체력이 닿는 한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어요. ‘어떤 역할을 골라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저를 믿고 찾아 주시는 곳에 온전히 쓰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