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연히 중고차 광고책자를 집어든 적이 있었다. 광고책자를 뒤적이다가 깜짝 놀랐다. 외관도 좋고 연식이나 주행거리도 괜찮은 자동차가 비슷한 차량보다 무려 5천불에서 1만불이나 낮은 가격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 차가 있단다. 하지만 직접 찾아갔더니 정작 그 차는 보여주지 않고 엉뚱한 차들만 권한다. 집요하게 광고책자를 들이밀자 그제야 내가 봤던 차를 보여주는데, 실제 가격이 광고보다 무려 1만 불이나 더 비쌌다. 따져 물었더니 인쇄가 잘못된 것 같단다. 화가 나서 그냥 돌아왔다.
당시에는 정말로 단순한 인쇄 실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손님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른바 '미끼상품'이었던 것 같다. 이런 판매기법은 자동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중개인들 사이에는 '미끼하우스'라는 것도 있다. 형편없이 낡은 집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먼저 보여준 다음, 실제로 팔고 싶은 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 집이 훨씬 좋아 보인다.
똑같은 미지근한 물도 찬물에 손을 담갔다가 만지면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다가 만지면 차갑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조효과(Contrast Effect)'다.
비싼 모피를 파는 가게에서도 비슷한 심리를 이용한다. 손님이 모피와 목도리, 장갑을 사려고 들어오면 값비싼 모피부터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수천 불짜리 모피를 보고 나면 몇백 불짜리 목도리나 장갑은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실험도 있다. 미국의 한 당구대 판매점에서 첫 주에는 고객들에게 329불짜리 저렴한 당구대부터 보여주었더니 그 주에 판매된 제품의 평균가격이 550불이었다. 그런데 다음 주에는 3,000불짜리 고급 당구대부터 고객에게 보여주었더니 그 주의 평균 판매가격이 1,000불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무엇을 먼저 보여주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씀씀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여성 속옷 전문점에서도 일부 점원이 손님에게 맞지 않는 사이즈를 일부러 권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불편한 속옷을 산 고객이 나중에 블랙 프라이데이나, 크리스마스 세일 때 다시 매장을 찾아 다른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고객을 위한 판매가 아니라 고객의 불편까지 이용하는 장사다.
이 모든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보다 소비자의 심리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로 고객을 유인할 목적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미끼상품이나 대조효과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끼상품으로 손님을 유인하거나,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어 재방문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는 속임수다. 고객에게 한 번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 '장사의 기술'이라면, 고객이 꾸준히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장사의 지혜'다. 오래 가는 장사의 지혜는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서 나온다. (변호사,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