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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오지랖

Los Angeles

2026.10.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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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요즘 세상에서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알려지고, 그렇게 알려진 선행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누군가의 선행을 들으면 감동하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반대로 악행이 드러나면 내가 당한 일인 양 분노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개인의 경험과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음식에도 조미료의 양이 달라지듯, 사람의 마음에도 저마다 다른 맛이 배어 있는 모양이다.
 
글을 쓰거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차 모 작가의 말을 인용하게 된다. “이 세상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나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시에는 내가 겪고 있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5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말이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생겼다. 친함이 편안함이 되고, 그 편안함이 상대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된다면 차라리 친하지 않은 편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나는 친한 사람의 편에 서려고 했다. 위로하고, 들어주고, 때로는 대신 나서서 해명도 해주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단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험담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씁쓸했다.
 
이제는 그 침묵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바보라서 모르는 것도, 겁이 많아서 입을 다무는 것만도 아니다. 굳이 나서서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느 날 뉴스에서 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말리기보다 휴대전화로 그 모습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정작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일은 쉽지 않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정치도, 사회도,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만든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말에 힘이 실리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도 결국 내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또한 자리의 힘 때문일 것이다.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사람이 건네는 말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 건네는 말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다. 말의 무게는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격과 실력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그 사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자격도, 힘도, 특별한 위치도 없는 내가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은 어떻게 보일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일부러라도 바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요즘은 한 가지 일을 내려놓으려고 하면 오히려 두 가지 일이 새로 생긴다. 가지치기하려는데 가지가 더 뻗어 나오는 셈이다. 그런데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시간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나누어왔다. 때로는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서운했고,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주었을까’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그 후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을 돕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진심은 당장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진심을 거둘 필요도 없다.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경험이고, 상처가 된다면 그것 또한 배움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에게서 사람을 배우고, 관계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며 조금씩 단단해졌다.
 
나는 남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간섭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 힘들어할 때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손을 내밀었다. 오지랖이면 어떠랴.
 
홈리스에게 돈을 건넬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그 돈으로 따뜻한 한 끼를 먹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 돈으로 술을 마시든 다른 것을 사든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을 건네는 데까지다. 그다음은 그의 몫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선행이라면,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작은 용기일지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준다면 삶은 지금보다 덜 차갑지 않을까.
 
앞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려 한다.
 
그런 오지랖이라면 나는 생활필수품 목록에 넣고 싶다.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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