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푹 자고 일어나 커튼을 걷으니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이 하얀 구름을 안고 내 곁으로 다가와 초록빛 소나무에 걸터앉는 듯했다. 푸른 하늘이나 하얀 구름이나 모든 것들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닐 테니 창조주 하나님이 손수 만드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시편에 나와 있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당신이 손수 만드신 하늘과/당신이 마련하신 달과 별을 보오면/사람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생각해 주시고/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이 시는 만물의 기원론에 대한 창조주의 초점이 사람임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이란 하나님의 피조물을 재료로 사용하고 하나님이 만물 속에 설정해주신 원칙을 똑바로 이용하거나 응용하지 않으면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광풍처럼 요동치는 인공지능(AI)도 이미 몇천년 전부터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이제야 비로소 피조물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인공지능은 새로운 과학의 범주에 포함됐다.
그래서 시편이 노래하는 것은 인간의 일보다 우주 만물의 기원과 그 질서의 문제에 대한 신앙적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실체를 알아차린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보다 인공지능의 이름을 더 아름답게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아니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타당성을 인공지능의 답변에 의지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인간 창조의 초점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위대함이 하나님 창조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인공지능의 종속물이 아니고, 만물은 사람의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만물은 다만 사람을 위해 있는 존재요, 만물 중에서 사람은 가장 귀하게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난 사명을 어기는 일이다. 사람은 다 같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보다 조금 낮게 지어졌고, 다른 피조물보다는 조금 높게 만들어졌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인공지능 등을 앞세워 과학과 기술 문명을 이루고 있지만 창조주의 섭리를 무시하고 초월하려고 한다면 종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