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배우를 꿈꾸는 연극지망생이 있었다. 꿈을 키우며 열심히 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청소와 잡일만 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토록 사랑하는 연극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대 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조연출자가 급히 불렀다. 단역 배우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사정이 생겨 빠지게 되었으니 대역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왕이 궁중에서 만찬을 베풀고 있을 때 뛰어들어와, 급보를 전하는 병사 역이야.” 그에게 주어진 배역은 그 한 장면뿐이었다. 정말 보잘것없는 대역이었지만 그는 가슴이 뛰었다. 가장 멋진 장면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부탁했다.
“제가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면 알려주세요. 그때까지 연습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무대 뒤뜰로 나가서, 뛰기 시작했다. 땀이 흘러내려 얼굴과 옷까지 땀범벅이 되도록 뛰었다. 숨은 턱까지 차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 바로 그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야. 빨리 와.”
드디어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쟁터에서 쉬지 않고 밤낮을 달려온 실제 병사의 모습을 실감 나게 잘 연기한 것이다.
영국의 연극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설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1907년~1989년)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후의 명연기로, 귀족 작위까지 받은 명배우가 그저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나는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연극에 미쳐있던 시절에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고, 많은 것을 깨우쳤다. 아, 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비해 최선을 다하리라. 내게 맡겨질 역할을 멋지게 해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리라.
나도 연극 연습을 하는 소극장 뒤뜰에 나가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아무 소용 없었다. 뛰어봤자 벼룩인데 별수 있으랴.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연극판을 떠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했다. 신체 구조상 배우의 꿈은 일찌감치 접고, 구석에 앉아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신바람이 났다. 신춘문예에 응모해, 낙방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열심히 썼다. 내가 쓴 글이 무대에서 연극으로 피어나는 기쁨이 너무 컸다. 그렇게 나는 극작가가 되었고,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멈춰선 극작가다. 포기한 것은 아니고 멈춘…. 로렌스 올리비에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했으면 나도 극작가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인인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국에 이민 온 뒤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과 달리 이민 사회는 원하는 대로 연극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연극판이 멈춰 있는 상황이니 극작가인 내가 할 일도 없다. 특히 나처럼 희곡을 문학작품이 아니라, 현장의 공연대본으로 여기는 입장에서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희곡을 쓰지 못하고 멈춰 있는 극작가인 나는 그저 부끄럽다.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법 많은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린 것을 대견하게 여기며 위로로 삼는다.
우리 동네 연극판을 다시 살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은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고, 공연을 위해서는 돈도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80년대 우리 연극판이 신바람을 내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