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샌클레멘테는 한적한 해안 마을이다. 이 조용한 소도시에 인접한 노르테 지역에서 지난 10월 16일 오전, 산불이 시작되었다. 불이 나기 2분 전 전력 공급을 중단했는데 이때 장비 결함으로 불꽃이 튀었을 가능성을 두고 전기 회사를 조사 중이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샌타애나 바람이 불어온다. 시속 68마일(약 110Km)의 건조한 강풍과 높은 기온은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다. 거센 바람을 탄 불길과 검은 연기가 5번 프리웨이 동쪽 산 마을을 삼켜버리는 동안, 사람과 야생동물의 삶터도 속절없이 함께 타들어 갔다.
샌타애나 바람이 시작되자 오렌지카운티 소방관들은 화재 위험을 직감하고 즉시 비상경계에 나섰다. 노르테 지역에 불길이 일자 소방관들은 신속히 진화 작업에 돌입했다. 비록 임야 570에이커와 주택 일곱 채가 타는 아픔이 있었으나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피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불길이 솟구친 건너편과 달리 내가 사는 곳은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자꾸 우울해진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는 서늘한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잿더미가 된 곳을 바라보면 우리가 누리는 안녕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산불이 가라앉고 사흘쯤 지났을 때다. 막 집을 나서는데 날개를 넓게 편 큰 새 한 마리가 이웃집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흰머리 독수리였다. 동네를 내려다보며 머뭇머뭇 원을 그리는 녀석의 움직임은 해안 산기슭에서 마주치던 그 기품 있고 당당한 포식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퍼덕임도 없이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선회하는 모습은 마치 집을 잃은 자의 서성거림 같았다.
문득, 살충제 오염으로 오래전 전멸 위기에 처했던 카타리나 섬의 독수리들이 떠올랐다. 1980년 이후 야생동물 보호 기관이 공을 들여 섬에 둥지를 만들어 키워낸 녀석들일 테다. 그중 몇 마리가 노르테 산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을 텐데, 그 터전이 한순간에 뭉개져 버린 모양이다.
사람의 삶이나 날짐승의 삶이나 재난 앞에 다를 바가 없다. 정성껏 일군 터전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삶이 이렇듯 바람 한 줄기에도 무력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인간이 그렇듯, 독수리도 잿더미가 된 터전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나선다. 생명이 지니는 본능이자 질기고 질긴 삶에 대한 의지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온갖 재앙이 일상이 되고 있는데, 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구 위에 무풍지대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내 집 담장 안의 안녕에만 안도하는 건 올바른 처사가 아닌 듯싶다. 이웃과 자연이 내쉬는 깊은 한숨에도 귀 기울여 볼 일이다.
날개를 접지 않고 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독수리를 생각한다. 집을 잃은 이들의 무너진 일상이 조속히 회복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