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로지’의 대표메뉴인 ‘옥돔 요리’. [사진 로지]
지난해 다녀온 식당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타이베이에 있는 ‘로지(logy)’였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생선요리를 만났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로지 로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을 요리다.
로지의 메뉴판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재료 이름만 적혀 있다. ‘옥돔/버섯/헤이즐넛’이라고 적힌 요리는 저온에서 부드럽게 찐 뒤 표면을 마무리해서 옥돔 속살이 투명하게 비쳤다. 이렇게 투명한 생선 살은 처음이라 덜 익은 건 아닐까 싶었는데 한 점 먹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셰프가 의도했을 딱 그 지점에서 익힘이 멈춰 있었다. 탄력을 잃지 않은 부드러운 생선 살 사이로 은은한 감칠맛의 버섯 육수가 배어 들었고, 헤이즐넛 오일 몇 방울이 고소함을 더했다. 은근한 풍미에 한 점을 넘길 때마다 다시 입맛을 다시게 되는 옥돔이었다.
타하라 료고. [사진 로지]
로지의 셰프 타하라 료고는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났다. 친구들 아버지가 어부였던 동네에서 자라며 그는 생선을 익혔다. 물론 어촌에서 자랐다는 사실만으로 훌륭한 생선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맛본 한 점에는 그가 보내 온 시간들이 오롯이 쌓여 있다.
타하라 셰프는 도쿄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플로릴레쥬(Florilege)’에서 수셰프로 일하다 타이베이로 건너왔다. 당초 플로릴레쥬의 분점을 시작하려던 계획이 바뀐 뒤에도 그는 대만에 남았다. 3개월 동안 대만 전역을 돌며 식재료를 배우고, 자신이 이곳에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일본산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만의 생선이었다. 그는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타하라 셰프는 비늘과 내장을 손질한 생선을 소금물에 적신 천과 종이로 감싸 얼음물 통에서 숙성시킨다. 천과 종이는 매일 갈아준다. 열흘 뒤 생선을 42도의 낮은 온도로 익힌 뒤,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 표면을 마무리한다. 값비싼 장비는 일절 없이, 재료를 살피고 시간을 들여 감칠맛을 끌어내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13석의 L자 카운터가 전부였던 작은 식당은 문을 연 지 약 5개월 만인 2019년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2스타로 올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2026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는 22위로 대만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타하라 셰프는 별을 따기 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매일 심사대에 오르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았다. 첫 번째 미쉐린 별을 받게 된 날도 시상식 축하 만찬장 대신 주방에 남아 그날의 손님을 받았다.
아마 그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을 늘 듣는 사람일 것이고, 결국 기어이 그렇게 하고야 마는 사람일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아서, 자기 자신이 용납할 수 없어서 최고의 경지를 좇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로지에서 맛본 음식에는 그런 성격이 배어 있었다. 그는 대만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들을 일단 해체해서 이해한 뒤, 누구도 생각 못한 자신만의 조합으로 다시 쌓는다.
흑설탕을 입힌 ‘장어튀김’요리. [사진 박희은]
생선 이야기를 한 김에 또 하나의 생선요리, 장어튀김을 소개하고 싶다. 얇게 튀긴 대만산 장어에 흑설탕을 태워 입혀 겉이 유리처럼 깨지게 만들고, 아래에는 산초를 우린 버섯 육수와 대만산 다크 초콜릿을 깔았다. 일본의 장어구이 가바야키를 간장 없이, 그만의 조합으로 다시 만든 요리다.
빵 대신 메인 요리와 함께 나오는 무쇠솥 ‘차밥’도 빼놓을 수 없다. 셰프의 출신지인 홋카이도 쌀을 대만 고산 우롱차로 짓고, 찻잎을 수북이 얹어 내는데 기름진 고기의 뒷맛을 차향이 씻어준다. 대만 차와 일본 쌀이 한솥에 담긴 이 밥이야말로 로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접시가 아닐까. 일본에서 자란 셰프의 경험과 대만에서 발견한 맛이 한 접시에 담겨 있다.
대만과 일본을 함께 담아내려는 노력은 공간으로도 이어진다. 13석의 작은 식당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길 때 타하라 셰프는 인테리어 전반에 깊게 관여했다. 벽돌 등 공간을 구성하는 재료에는 일부러 대만산과 일본산을 섞어 썼다. 가구는 일본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로지만을 위한 ‘로지 타이베이 컬렉션’을 새로 만들었는데, 테이블은 대만의 식사문화에 익숙한 원탁을 택했다. 대만의 재료와 문화 위에 일본의 기술과 감각을 더하는 요리 방식을 공간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식만큼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싶은 것이 페어링이다. 페어링의 완성도를 보면 그 식당이 얼마나 단단한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완성도란, 와인만 마셨을 때와 음식을 먹고 다시 마셨을 때 와인과 식사가 어떻게 달라지고 더 풍성해지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로지의 페어링은 식사의 중요한 일부였다. 알고 보니 이곳의 소믈리에 케빈 루는 2023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대만 소믈리에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만 최초로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한 인물이다.
타하라 셰프는 “책임이 커질수록 재료를 직접 만지고 매일의 미세한 변화를 지켜보며 얻는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며 “계속 요리사로 남겠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라고 했다. 또 “로지가 여행자들이 대만을 택하는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적어도 내게는 이미 그렇다. 로지에 가기 위해 타이베이행을 생각하니까. 낯선 도시에 와서 그곳의 재료를 다른 눈으로 들여다본 셰프가 이제 그 도시를 찾아갈 이유를 만들고 있다.
박희은 자유기고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벤처투자자. 전 세계 도시를 오가며 로컬 미식·공간·사람을 통해 문화의 결을 읽는 것을 즐긴다. 셰프를 하나의 창업자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미식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