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인공지능(피지컬 AI) 열풍이 항공 업계에 거세게 불고 있다. AI의 정밀한 두뇌를 필요로 하는 군용 드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항공기의 유지·보수·정비(MRO)에서 안전성을 향상시키고 비용은 낮추는 AI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어서다. 시장 조사 업체 스트레이츠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드론 시장 규모는 올해 487억1000만 달러(약 64조5000억원)에서 2034년 1389억6000만 달러 (약 184조원)로 약 3배 커지면서 군용 드론이 절반가량의 비중을 차지(올해 269억7000만 달러→2034년 630억5000만 달러)할 전망이다. 항공 업계는 피지컬 AI를 향한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우크라이나의 드론 대성공이 미래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다(Ukraine’s drone triumph opens window to the future of war).’ 지난해 6월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군용 드론의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 영국 BBC와 가디언 등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 2022년부터 지금껏 확전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에 군용 드론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당초 드론은 보조적인 정찰 장비 정도로 인식됐지만, 전력 면에서 러시아보다 절대적 열세가 예상된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러시아 후방을 타격해 항공기 여러 대를 파괴하고 수도 모스크바까지 위협할 만큼 역할이 커졌다.
글로벌 드론 시장 규모 2034년 184조원 드론에 접목된 AI 기술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기존 드론은 조종사와 통신이 끊길 경우 표적을 향해 계속 비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AI가 차량·장비 등의 영상 정보를 인식·판단하거나, 이동하는 표적 위치를 지속적으로 자동 추적해 드론을 조종사와의 교신 없이도 비행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AI는 전 지구적 무선 항행 위성 시스템(GPS) 교란 상황에서 영상 정보를 활용해 드론의 항로를 유지시키고, 대량의 정찰 영상을 빠르게 분석해 표적 발견과 작전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이처럼 AI 기술의 발전은 드론을 조종사와 GPS 없이도 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손준영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무인기(無人機)인 드론은 조종사가 직접 탑승해야 하는 일반 항공기 등 유인(有人) 자산보다 도입과 운용에 낮은 비용이 들고, 생산·개량 주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이 때문에 전쟁 대비용뿐 아니라 통상적인 국경 보안과 테러 대응 작전에서도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항공 산업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고비용을 들여 모든 항공기를 최고 성능으로 만들거나 유지할 필요성이 감소했다”며 “AI를 탑재한 무인기 다수가 전술적으로 많은 역할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소형 협동 무인기(KUS-FX). [사진 대한항공]
시장의 변화를 감지한 업계는 AI 무인기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서비스업인 항공운송 분야 중심이던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조까지 아우르는 항공우주와 방산 분야로 확장하면서 AI 무인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AI의 임무 자율 기술을 탑재하고 군집 비행을 하는 약 4m 길이의 소형 협동 무인기(KUS-FX), 우리 군의 대공 무기 체계를 시험하고 요격 훈련을 하는 목적의 아음속 무인 표적기, 표적을 식별해 정밀하게 타격하는 소형 및 중형 타격 무인기를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임무 자율 기술은 사람이 지상에서 기체를 원격 조종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휘관이 목표를 제시하면 무인기 스스로 작전을 짜고 역할을 나눠 유기적으로 협력해 임무를 수행하는 기술이다.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MUAV). [사진 대한항공]
군집 비행 기술은 수십 대의 무인기가 무리를 지어 비행할 때 서로의 위치와 속도 등 데이터를 실시간 주고받아 충돌 없이 간격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부터 미국의 AI 방산 업체 안두릴(Anduril)과 협업해 이런 AI 기술을 접목한 무인기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군용뿐 아니라 민간의 산불 등 대형 재난 현장용 수요도 충족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통상 산불이 나면 사람이 직접 화재 징후를 파악해 헬기를 띄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만, AI와 무인기 기반의 대응 시스템을 도입하면 AI가 지상·공중·우주(인공위성) 등 다양한 곳에서 분산된 센서 데이터를 통해 24시간 산불 징후를 감시한다. 불씨가 감지된 즉시 무인기가 자율로 위험한 화재 현장에 출동, 사람을 대신해 초기 진화에 나선다.
한화에어로가 개발 중인 단거리 이·착륙 무인기 ‘모하비 STOL’.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AI 무인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무인기 업체 GA-ASI(General Atomics Aeronautical Systems)와 협업해 일반 활주로보다 짧고 제한적인 공간(단거리)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대형 무인기 ‘모하비(Mojave)’를 공동개발 중이다. 또 자체 AI 모델인 ‘엔지니어스(En-genius)’를 통해 AI 기술을 무인기의 자율 비행뿐 아니라 항공엔진 개발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KAI는 유인 전투기에서 무인기를 통제하는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KAI 관계자는 “AI가 목표를 설정하고 유인기에 맞춰 임무를 수행하도록 성능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수출 성과, AI 전문 인력 확충 등은 과제 이와 함께 업계는 피지컬 AI를 활용한 디지털 MRO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기존 MRO는 정비사가 크레인을 타고 높은 곳에 올라 항공기 외관의 흠집 등을 눈으로 확인해 비교적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AI가 적용된 군집 드론과 지상 로버를 투입하면 이들이 센서를 활용해 스스로 위치를 파악하고, 주변 환경을 3차원 지도로 그려가며 항공기 주변을 자율 주행한다. 이후 안전하고 빠르게 항공기 곳곳의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미세한 균열이나 부품 결함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점검에 이런 피지컬 AI를 적용했다.
글로벌 디지털 MRO 시장 규모는 올해 13억50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에서 2034년 41억2000만 달러(약 5조5000억원)로 3배가 될 전망이다. 업계의 다음 목표는 수출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방산과 무인기, MRO 사업은 장기 계약 기반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지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업계가 이들 분야에서 수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의 수요를 반영한 AI 기술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급변 중인 항공 산업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아우르기 위한 AI 전문 인력 확충도 업계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