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톰 크루즈라서 망했다…‘2100억 대작’ 역대급 폭망한 이유

중앙일보

2026.10.30 15:00 2026.10.30 19:1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
[김도훈의 필름 IN] 영화 ‘디거’ 부진의 의미

톰 크루즈는 너무 애를 쓴다. 가만 생각해보니 다른 배우에 대한 글은 이렇게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일단 설명부터 좀 늘어놔야 한다. 톰 크루즈는 그럴 필요가 없다. 톰 크루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계속 스타였던 사람은 몇 없다. 계속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스타는 없다. 지금 남아 있는 할리우드 스타를 떠올려보시라.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도 스타다. 다만 그들은 거대한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이끄는 스타였던 적은 없다. 1980년대 스타 중 여전히 스타로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시절 빛났던 스타들은 늙었다. 늙으면 피곤하다. 늙으면 애를 쓰기가 힘들다. 늙어서 너무 애를 쓰면 대중은 비웃기 시작한다.

       영화 ‘디거’ 프로모션을 위해 내한했던 톰 크루즈. [중앙포토]

영화 ‘디거’ 프로모션을 위해 내한했던 톰 크루즈. [중앙포토]

우리는 톰 크루즈를 오랫동안 선망하면서도 약간 비웃어왔다. 그의 영화는 실패하는 순간 온전히 그의 탓이 됐다. 그의 21세기 경력을 이끈 ‘미션 임파서블’의 마지막 모험은 크게 실패했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2025)은 톰 크루즈가 베푼 마지막 만찬이었다. 만찬을 즐기러 극장으로 향한 사람은 몇 없었다. 할리우드는 환갑 넘은 양반이 비행기에 매달리는 서커스도 이젠 끝이라고 수군거렸다. 모든 실패가 톰 크루즈 탓이 되는 이유는 하나다. 톰 크루즈 영화는 톰 크루즈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이 영화인 배우다. 이름이 장르인 남자다.

다른 배우들은 그렇지 않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려보라. 그들 영화는 그저 브래드 피트 영화나 디카프리오 영화는 아니다.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는 디카프리오 영화인 동시에 감독인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영화였다. 브래드 피트가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는 브래드 피트 영화라기보다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였다. 톰 크루즈 영화는 감독이 누구든 그냥 톰 크루즈 영화가 된다. 이건 일종의 업보다.

이를테면 얼마 전 개봉한 ‘디거’도 그렇다. ‘디거’는 제작비가 1억6000만 달러다. 거의 마블 영화 제작비 수준이다. 이 정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톰 크루즈라는 이름이다. 알레한드로 이냐리투는 예술 영화에 가까운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이 정도 예산을 거머쥔 적은 없다. 사람들은 ‘디거’가 톰 크루즈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했다. 에단 헌트도 은퇴했으니 이젠 몸을 덜 쓰는 영역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온 것인데, 이번 미션은 망했다. 글로벌 흥행 수익 5000만 달러 정도다. 손실 규모가 지나치다. 톰 크루즈 역사상 가장 크게 돈을 잃은 영화가 됐다. 아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큰 돈을 잃은 미션 중 하나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최초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느냐다. 젊은 시절 그는 거대한 블록버스터에만 출연하는 스타가 아니었다. 1990년 베트남 참전 전사를 연기한 ‘7월 4일생’(1989)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제리 맥과이어’(1996)로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매그놀리아’(1999)로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나는 ‘트로픽 썬더’(1996)로도 그가 후보에 올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영리하게 전략적으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 성격파 배우, 혹은 오스카용 진중한 배우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화를 끊고 ‘미션 임파서블’, ‘잭 리처’ 등 액액션 스타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동생뻘인 디카프리오가 끝없이 진중한 배우로 평가받기 위해 애를 썼다면, 톰 크루즈는 영원한 고전적 스타로 남기 위해 애를 썼다.

톰 크루즈가 연기 변신에 애썼지만 흥행에 참패한 ‘디거’.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톰 크루즈가 연기 변신에 애썼지만 흥행에 참패한 ‘디거’.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명성만으로도 영화 움직이던 고전 스타
‘디거’는 톰 크루즈가 젊은 시절의 ‘레인맨’(1988), ‘7월 4일생’, ‘어 퓨 굿맨’(1992) 이후 처음으로 진중한 성격파 배우로 평가받기 위해 애쓴 영화다. 예순이 넘은 텍사스 석유 재벌을 연기하기 위해 예순이 넘은 모양새로 특수 분장을 했다. 자기 나이 역할을 연기하려고 자기 나이로 분장을 한 사례는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환경을 파괴해 세상을 종말로 몰아가는 자본주의 악당 ‘디거’는 사실 너무나도 톰 크루즈답다. 그는 드라마틱한 연기를 하는 배우다. 우리는 그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매그놀리아’와 ‘트로픽 썬더’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코미디 영화 ‘트로픽 썬더’에서는 관객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특수 분장을 하고 배 나온 대머리 에이전트를 연기했다.

‘디거’는 ‘트로픽 썬더’의 연장선이다. 톰 크루즈는 자신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다음 챕터를 위한 멋진 출발이 될 거라 여겼을 것이다. 다만 ‘트로픽 썬더’와는 달리 ‘디거’는 톰 크루즈가 주연인 영화다. 그가 거의 모든 장면을 장악하는 영화다. 굉장한 연기지만 결국 톰 크루즈 영화다. 오로지 톰 크루즈라는 이름만으로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냐리투라는 거장의 이름마저 지워진다. 영화의 상업적 실패도 오로지 톰 크루즈의 업보가 된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으로 업보를 좀 지울 수도 있지만, 오스카가 상업적으로 크게 실패한 영화의 주연에게 상을 주는 일은 잘 없다. 자칫 최후의 고전적 스타가 오스카를 받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다면, 비극이다.

최후의 고전적 스타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한때 그런 스타들이 있었다. 이름만으로 가슴을 뛰게 만드는 스타 말이다. 요즘은 없다. 우리는 티모시 샬라메만을 보기 위해 ‘듄’ 시리즈를, 톰 홀랜드를 보기 위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러 가지 않는다. 마블 스타들은 오로지 마블 영화 속에서만 스타다. 그들은 스타라기보다 캐릭터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느 정도 고전적 스타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 다만 그들은 영화 속에서 종종 캐릭터 속으로 숨길 원한다.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톰 크루즈는 그렇지 않다. 그는 영화보다 유명한 배우다. 오로지 자신의 스타 파워로 영화를 만드는 배우다. 이런 배우는 더는 없다.

할리우드의 옛 시절을 생각해보자. 클라크 게이블, 험프리 보가트, 캐리 그랜트,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브 맥퀸, 아놀드 슈워츠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등 할리우드 황금기에서 1980년대까지의 스타들은 이름 그대로 스타였다. 관객이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가 배우였다.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핵심은 배우의 페르소나였다. 존 웨인은 언제나 서부의 존 웨인이었다. 험프리 보가트는 언제나 우울한 누아르 속 험프리 보가트였다. 캐리 그랜트는 언제나 신사였다. 스티브 맥퀸은 언제나 약간은 삐딱한 악동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언제나 인상 쓰는 안티히어로였다. 아놀드 슈워츠제네거는 언제나 거대한 근육이었다. 브루스 윌리스는 언제나 투덜거리는 액션 서민이었다. 관객들은 변신 같은 걸 기대하지 않았다. 익숙한 스타의 익숙한 성격이 여러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려고 극장을 찾았다. 고전적 스타들은 같은 걸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며 스타로 남았다.

미션 임파서블:파이널 레코닝. [중앙포토]

미션 임파서블:파이널 레코닝. [중앙포토]

탑건:매버릭. [중앙포토]

탑건:매버릭. [중앙포토]

상업적 실패했지만 오스카상 받을지 주목
그런 시대는 끝났다. 스타 시스템은 1980년대와 아마도 1990년대를 마지막으로 무너졌다. 나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고전적 스타의 시대를 작살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셀러브리티의 시대다. 고전적 스타들이 하나의 페르소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비현실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제 스타는 비현실적인 존재로 남을 수가 없다. 친근함을 팔아야 한다. 팬들과 대화해야 한다. 스스로의 인간적 결점을 드러내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톰 크루즈는 여전히 고전적이다. 종교 등 사생활이 종종 미디어의 타깃이 됐지만, 그는 딱히 말이 없다. 스크린 뒤로 숨기를 원한다. 친근해지려는 노력 대신 경이로운 존재로 남으려 한다. 바로 그게 고전적 스타다. 관객과 똑같은 사람이 될 생각이 없다. 고전적 스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잠시나마 되고 싶어 하는 존재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옛 배우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스타는 신비로움이 있어야 한다’. 신비로움의 시절이 막을 내리고 있다. 톰 크루즈는 거대한 극장을 위한 영화만 만들고, CG 아닌 육체의 액션을 지키며 신비로움을 유지했다. 지금 할리우드는, 아니 영화는 그가 대표했던 것들과 완벽하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탑건: 매버릭’, ‘디거’ 등 톰 크루즈의 최근 영화들은 자신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투쟁처럼 느껴진다. 그가 마지막 고전 스타인 이유는 더는 그런 스타가 탄생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 스타를 필요로 하던 할리우드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톰 크루즈는 그래도 싸울 것이다. 매달릴 것이다. 뛰어내릴 것이다. 마하의 속도로 날 것이다. 지킬 것이다. 고전일 것이다. 톰 크루즈일 것이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